정치가와 탐험가 세종대왕의 소나무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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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치가와 탐험가 세종대왕의 소나무사랑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애국가의 한 구절을 떡 하니 차지하고 있는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기상으로 표현될 만큼 우리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나무이다. 특히 조선 왕조 시대에 소나무는 단연코 으뜸가는 재목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소나무와 관련된 기록만도 무려 750건이나 된다. 오죽하면 모든 소나무가 국가의 소유였을까? 우리 역사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소나무가 세종 시대에는 어떻게 사용되었으며 또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알아보자.
Ⅱ. 본론
< 생명수 >
일월곤륜도(日月崑崙圖)
조선왕조실록에는 소나무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가진 세종이 뒤에 설명할 강력한 소나무 보호 시책뿐만 아니라 제단 주변이나 나라의 주산, 왕릉과 궁궐 주변에 소나무를 심고 가꾸라 명하였던 기록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은행나무도 있고, 버드나무도 있는데 왜 하필 소나무였을까? 소나무가 바로 조선 왕조의 ‘생명수’이기 때문이다. 국사에 임하는 임금의 용상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일월곤륜도(日月崑崙圖)에서 해와 달은 왕과 왕비를 상징하고 천하제일의 성산이라는 곤륜산은 왕실의 존엄을 상징한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그림에 살아 있는 생명체로 유일하게 소나무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조선 왕조 시대의 소나무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왕릉과 궁궐 주변을 항상 좋은 기운이 에워싸도록 소나무를 특히 많이 심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왜 소나무를 생명수로 하였을까? 조선 왕조는 유교를 바탕으로 한 왕도 정치를 하였으며 지조와 절개, 충절과 기상을 중요시 하였다. 그 지조와 절개, 충절과 기상을 나타내내는 소나무는 예부터 국민들의 가슴 속에 각인되어 왔으며 그런 상징성을 유교와 더불어 시대정신으로 삼고자 하였던 것이다.
세종 23권 6년 1월 20일 (정유) 002 / 예조에서 선농단·우사·기우제 지내던 제단의 크기에 관해 아뢰다
예조에서 봉상시(奉常寺)의 첩정(牒呈)에 의하여 계하기를,“선농단(先農壇)과 우사(雩祀)와 산천(山川)에 기우제 지내던 제단(祭壇)은 방(方)으로 1백 보(步) 되게 하고, 그 안에서 단(壇)에 가는 거리가 10보쯤 되는 주위에다 소나무를 심으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세종 35권 9년 2월 2일 (경신) 007 / 소나무를 성균관의 주산에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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