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관점에서 본 세종의 철인 哲人 정치

 1  플라톤의 관점에서 본 세종의 철인 哲人 정치-1
 2  플라톤의 관점에서 본 세종의 철인 哲人 정치-2
 3  플라톤의 관점에서 본 세종의 철인 哲人 정치-3
 4  플라톤의 관점에서 본 세종의 철인 哲人 정치-4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플라톤의 관점에서 본 세종의 철인 哲人 정치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뛰어난 지도자’는 항상 역사적으로 갈구된 존재였다. 그러한 존재를 필요로 하는 곳의 정치체제가 황제나 왕으로 대표되는 전제주의 정치든, 의회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현대의 정치든, 아니면 과거 한국의 박정희전두환 등과 같은 군부 독재 정치이든 말이다.
그러면 ‘뛰어난 지도자’는 무엇일까? 역사적으로 다종다기했던 정치 체제에서는 ‘뛰어난 지도자’의 상과 요건을 각자의 이념 하에 제시해 왔다. 예컨대, 그것을 유교가 대표적인 통치 이념이었던 동양에서는 ‘군자(君子)’로, 합리적인 의사 조정을 중시한 서양에서는 ‘신사(gentle man)라고 명명하였다.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철학자인 플라톤은 ‘국가(Politeia)를 통해 철인(哲人)에 의한 전제정치를 이야기 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철인‘은 도덕적이며 지혜로운 인간을 의미한다. 또한 ’정의‘는 이러한 철학자의 지배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철학자는 완전한 이성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며, 완벽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다. 플라톤에게 있어 국가는 어디까지나 정신의 산물이었으며, 이러한 국가를 완벽하게 통치할 수 있는 사람은 완벽한 이성을 소유하고 있는 철학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이성이 개인의 욕망과 정신을 지배해야 하며, 또한 이성은 주권을 지니고 국가내의 다른 계급들을 지배해야 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이러한 철학자의 지배에 의한 국가, 즉 법에 저촉 받지 않고 규칙에 구애 받지 않는 철학자가 통치하는 이데아를 바랬다.
조선의 세종(世宗)을 한번 생각하여 보자. 세종은 세상 밖의 온갖 문제를 자기 안으로 끌어들여 간결한 해결책을 만든 다음, 그것을 집요하게 관철해 내는 비범한 지도자였다. 영토 하나만 생각해 봐도, 현재의 한반도 강역을 최종적으로 확정한 지도자가 바로 세종이다. 그는 온갖 난관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삶의 공간을 확정한 장본인이다. 조선 문물의 기본 골격 또한 세종의 주도하에 완성되었으며, 조선 왕조 건국과 정치의 기본 이념이었던 ‘위민(爲民)의 정치’를 신중한 논의와 준비를 통해 실행하였다.
이 글에서는 세종의 정치를 플라톤의 ‘철인 정치론’의 관점에서 평가하고, 분석하려 한다. 하지만 어떠한 결론을 내려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국가’를 통해 플라톤은 전제정치를 옹호하고 있지만, 이 글에서는 어떠한 정치 체제가 필요한가에 대한 입장은 논하지 않으려 한다. 설사 세종의 정치가 진정 소요순(小堯舜)이고 철인의 것이며, 세종이 다시 살아난다 할지라도 말이다! 세종의 정치가 어떠한 탁월함이 있으며, 현재적 관점에서 어떠한 것을 되살려야 할지에 대한 것이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플라톤이 강조하는 통치자 계층의 선발에 적용되는 기준들을 보면, 주지주의(主知主義)가 그 기본적 특성으로서 분명히 드러난다. 수호자, 통치자들의 국가 수호는 국가를 타락과 쇠망으로부터 지켜내야 한다는 포괄적 의미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그들은 국가를 사랑해야 하며, 이것은 또한 국가의 보존이 우선적으로 확보될 때에만 그들 자신의 안녕과 복지도 보장될 수 있다는 인식을 전제한다.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차이를 넘어서는 차원에서 확보되는 진정한 선의 인식만이 비로소 국가 통치자들에게 그들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능력을 부여해 준다.
세종 중반기의 국가적 프로젝트인 4군 6진의 개척에서 ‘국가 수호’에 대한 세종의 철인적 면모가 잘 드러난다. 세종은 국가적 안위를 위해 군진에 관한 철폐론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많은 백성들을 이주시키고 군역 면제와 토관직 제수 등의 혜택을 주면서 4군과 6진을 설치하여, 조선의 국방을 안정시키고 오늘날 한국의 강역을 확정시켰다. 또한 세종 16년, 대사헌 고약해가 상서한 강무(講武) 정지의 의견에 대해 무비(武備)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이가 오히려 변란이 발생할 경우 백성의 부담을 더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플라톤은 수호자들을 경제적 활동근거로부터 엄격히 분리시킬 것을 요구한다.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국가 전체의 구성을 결정하는 기능적 관점 때문이다. 수호자들이 그들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오직 그들 자신이 아무런 경제적 이익도 추구하지 않을 때뿐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욕심’ 때문에 부패된다. 이러한 규정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도처에 난무하는 부패와 정실 정치의 폐단들에 대한 비판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수호자 계층은 오직 ‘전체의 선’을 위해서만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종의 애민정책, 그리고 지배 정치인의 청렴성에 대한 단호함은 이러한 플라톤의 철인 정치론과 긴밀히 연결될 수 있다. 세종의 정치는 사회적 약자들의 숨은 고통에 대한 보살핌(caring)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는 조선의 건국이념인 위민(爲民)으로, 왕의 소명은 백성을 보살피는 것이고, 그것에 실패하면 정치의 정통성도 상실된다는 천명론이었다. 이러한 세종의 정치는 조세, 구휼 대책, 형벌 정책의 개선으로 발현되면서, 이상적인 정치에 가까운 전형을 창조했다. 또한 세종은 ‘애민(愛民)’이라는 자신의 정치의 가장 큰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몸소 도성 밖으로 나아가기까지 하면서, 백성의 고통을 몸소 함께 하고자 하기도 하였다. 세종은 백성의 안위를 위협하는 지배 정치인들의 비리에 대해서는 매우 단호하고 엄격하였는데, 세종 25년, 흉년에 백성을 구호하기 위한 곡식인 진제미를 부당 수취한 덕천의 수령 최세온을 목을 벤 것이 단적인 예이다.
플라톤은 정치는 이성적 원칙을 따라야 하며, 단지 전래되어 온 전통적 규범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법에 대한 플라톤의 견해는 ‘정치가(Politikos)에 잘 드러나고 있는데, 진정한 정치가의 능력과 기술은 법률보다 더 우월한 위치를 점한다. 플라톤은 (현명한) 의사나 (뛰어난) 배의 조타수는 여러 사람들과 상황들의 차이를 배려하고 이에 적응할 수 있지만, 법은 단지 고정된 규칙으로서 오직 평균적 상황들만을 고려할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며, 정치가의 절대주의적 특성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플라톤은 이와 함께, 현실적인 한계로 인하여 원론적으로는 국가가 성문화된 법에 의해 다스려질 수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다.
세종은 매우 신중한 자세를 가지고 법을 적용하고 집행하였으며, 법의 적용과 미비에 대해 최대한의 주의와 민감성을 가지고 대처하였다. 백성의 생명을 가장 중히 여기는 세종의 원칙에 의해 법의 오심을 최대한 줄이려고 하였으며, 법의 미비점 또한 개선되었다. 또한 형벌과 고문 제도에 개선을 가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백성과 왕실에 대한 중요한 정치적 원칙은 단호하게 처신하며 유지하였다.
이러한 세종이 가지고 있는 법에 대한 관점과 처신은 플라톤이 강조하는 ‘정치가’의 그것으로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세종 15년, 억울한 누명을 쓴 약노의 사건을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진위를 밝혀냄으로써 약노의 억울한 생명을 구원한 일이나, 예조판서 허조와의 논쟁 끝에 ‘부민고소금지법’의 이치(존비의 분수와 위계질서를 보전하는 것)는 지키면서, 한계점(억울한 상황에서도 위에 있는 계층과 관리를 고소할 수 없게 한 것)을 해결하는 절충안을 낸 것은 법에 대한 세종의 뛰어난 시각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참고문헌
참고 문헌
▶『고대 그리스 철학』(프리도 릭켄 지음, 김성진 옮김, 서광사, 2000)
▶『세종, 조선의 표준을 세우다』(이한우, 해냄, 2006)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