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론 영국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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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론 영국 정당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영국의 정당은 17세기 후반 카톨릭교도인 제임스의 왕위계승 문제를 둘러싸고 의회에서 휘그당과 토리당으로 분열하면서 양당체제가 시작되었다. 휘그당은 민권을 존중하는 진보적인 부르조아 계층이 주도하고 토리당은 왕권을 옹호하는 귀족과 지주로 구성되어 이들 양당은 서로 경쟁을 벌이면서 당시의 주요 현안과 관련해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정책을 펼쳐왔다. 양 정당은 조지 3새부터 시작해 조지 4세, 윌리엄 4시에 이어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전기를 거치면서 교대로 정권을 장악하여 이상적인 정당정치와 내각 책임제를 완성하였다. 이후 1832년에 휘그당은 자유당으로, 토리당은 보수당으로 각각 개칭하였다. 19세기에 들어와 산업혁명이 절정에 달하면서 점차 노동자들의 세력결집을 통해 자치세력화를 도모하게 되자 1900년에 노동조합과 사회주의 단체의 대표들에 의한 노동위원회가 결성되고 이어 1906년에 노동당이 창당되었다. 노동당의 창당으로 영국은 3당 체제로 돌입했으나 자유당은 1차대전중 로이드 조지의 거국일치적 연립내각을 반대한 후 당내 분열을 일으켜 급속히 쇠퇴하면서 재차 보수노동당의 양당체제로 재편되었다. 영국 정치의 두드러진 특징인 이와같은 양당제도는 영국이 강력하고 안정된 정치역사를 갖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영국의 현 정치체제 및 2대정당의 특성은 정치권력의 핵인 내각의 특수한 역할에 의해 형성되어 온 것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영국 정치의 최종 목표인 내각의 장악은 18세기 초에 휘그당과 토리당, 이후 자유당과 보수당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와 노동당과 보수당의 대결로 이어져 왔다. 양대 정당 사이의 끊임없는 대립은 늘 국가적인 정치 현안을 만들어 내기 마련이고 그 현안 하나하나가 지역선거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양 정당은 한 시도 방심하지 않고 그들의 정책을 일관되게 펼쳐 옴으로써 오늘날 영국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다.
2. 1차대전 후 영국
전후의 영국은 미국에 대한 전시 채무국으로서 해외시장이 크게 축소되었고, 달러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파운드화의 지위가 하락하면서 국제적 지도권을 미국에게 빼앗겼다. 특히 종래 런던의 롬바르드가가 이룩했던 국제금융상의 역할은 뉴욕의 월가로 건너가고 말았다.
1918년 12월에 영국에서는 제4차 선거법 개정이 이루어져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투표권이 부여되어 보수당이 하원에서 3분의 2를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
1922년 11월의 총선거에서는 총 615석 가운데 보수당이 347석을 얻어 로오(Andrew B. Law) 보수당 내각이 수립되었으나 1923년 5월 그의 사망으로 볼드윈(Stanley Baldwin)이 수상직을 계승했다.
그 동안 전후의 경기 침체와 실업자 증대가 경제에 충격을 주어 노동당을 배경으로 하는 노동조합의 공세가 커져 갔다. 1923년 12월의 총선거에서는 하원에서 보수당이 제1당은 유지했으나 191석을 얻은 노동당이 자유당(159석)과 제휴하여 제1차 맥도날드 내각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페이비언사회주의 이념을 구현하면서 국제협조에 힘썼으나 전후의 경기침체를 타개하지 못하였고, 자유당마저 이탈하여 10월에 하원에서 불신임결의를 당하고 결국 하원을 해산하면서 국민의 신임을 묻기 위해 총선거를 실시했다. 총선 결과는 그동안 노동당의 사회정책에 불만을 가진 노동자들의 불신으로 노동당은 패배하고, 보수당이 승리하여 제2차 볼드윈 내각을 성립시켰다. 자유당에서 보수당에 복귀한 처칠은 하원에 진출할 수 있었고 볼드윈 내각의 재무상이 되었다.
보수당 내각도 경제불황을 극복하지 못하여 위기에 처하자 1926년 5월에 탄광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켰다. 파업은 전차, 철도, 버스, 신문, 전신 등 전 산업분야에 확대되어 약 275만 명의 노동자들이 이에 가담하였다. 파업은 처칠 재무상의 요청으로 공권력이 동원되어 진압되었다.
이러한 경기 침체 속에서 1929년 5월에 총선거가 실시되어 노동당이 288석을 확보하여 59석의 자유당의 협력을 얻어 제 2차 맥도날드 내각을 수립했다. 노동당의 승리는 1928년의 제 5차 선거법 개정으로 21세 이상의 남녀에게 투표권이 부여되어 20세의 젊고 가난한 여성들의 다수가 노동당 후보에게 투표했기 때문이었다.
1930년에 경제공황이 영국에 파급되자 맥도날드는 실업수당 삭감 문제로 자당인 노동당의 반대에 부딪치자 노동당 내각을 해체하고 보수당, 자유당과 연합하여 거국일치 내각을 구성하고, 보수당 당수 볼드윈을 부수상으로 임명하였다. 볼드윈은 1935년 맥도날드를 계승하여 제 3차 볼드윈 내각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거국일치 내각은 1937년 5월에 체임벌린(Neville Chamberlain)의 보수당 단독내각이 성립되어 무너졌다.
한편 대영제국(British Empire)은 너무 팽창하여 구심력있는 통치권의 유지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렇게 방대한 제국을 본국만의 국력으로는 통치할 수가 없어서 1926년에 본국 및 각 자치령 대표로 구성되어 있던 제국회의를 소집하여 대영제국을 영연방(British Commonwealth of Nation)으로 개편하였다. 영연방의 구성국은 모두 본국과 동등하게 완전한 독립국가가 되었으며, 단지 영국 왕실에 대한 충성 조항은 유지되다가 그 조항도 제 2차대전 후에 폐기되었다.
1932년에 맥도날드 정부는 오타와에서 영연방경제회의를 소집하여 오타와 협정을 체결하여 경제공황 타개책으로 전 연방구성국가들을 보호관세의 장벽으로 둘러싸는 배타적인 경제블럭을 구축하게 되어 1840년 이래 영국의 자유무역의 전통은 무너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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