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브룬너 EmilBrunner의 교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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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에밀 브룬너 EmilBrunner의 교회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에밀 브룬너는 1889년 12월 23일 스위스 취리히 근처 빈터투르에서 출생 하였으며, 고등학교를 졸업 후 각각 취리히와 베를린 대학에서 수학하였고, 취리히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에밀 브룬너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점은 1차 세계 대전 당시에 군복무를 하던 시절과 목회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영향은 그의 학문적인 노선이 현실과 목회에 직접적으로 이해되어지는 실천신학적인 추구를 하도록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후에 그는 미국의 프리스턴 객원 교수를 비롯하여 도쿄 기독교 대학의 조직신학과 실천신학의 교수로 재직하다가 1966년 7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특별히 에밀 브룬너의 사상은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전통과, 출생지로부터 개혁주의 교회적인 영향을 받았다. 더욱이 칼 바르트와 더불어 신정통주의 신학적인 노선을 함께 했지만 후에 자연신학적인 신학의 가능성에 대해 주장하는 논문으로부터 바르트와는 결별을 선언하게 되었다. 에밀 브룬너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상은 마틴 부버의 ‘나와 너’로부터 시작되는 인격철학이다. 그는 실존주의 사상과 더불어 나와 너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진리와 관계의 상관성을 신학적으로 전개해 나갔다.
교회를 오해하고 있는가?
교회에 대한 생각들은 유대교에서 시작하여 가톨릭과 개신교까지 다양한 이해로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특별히 문제가 되는 점은 교회는 저마다 자신의 옮음을 주장함과 동시에 독특한 모습과 강조점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다양성과 저 마다의 강조점으로부터 과연 교회의 모습은 무엇인가? 이것이 틀리고 저것이 맞는 것인가? 아니면 이것과 함께 저것도 맞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존재하는 것일까? 특별히 저자는 이러한 방법들로부터 에클레시아와 교회를 구분한다.
에클레시아란 무엇인가?
교회로부터 에클레시아로(출발점)
같은 정통을 공유하고 있는 가톨릭과 개신교는 같은 전통이라는 토대에서도 교회에 대한 이해가 나눠짐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가톨릭의 경우 역사 안에서 정통을 가지고 형성되어온 ‘제도로서의 교회’를 강조하는 반면 개신교(특별히 스위스 사람이기에 칼빈의 개신교)는 가톨릭에 반하여 ‘구원받은 개인’과 그 모임으로서의 교회를 강조한다.
그렇다면 과연 교회란 무엇일까? 에밀 브룬너는 교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에게 있어 참다운 교회의 본래적인 모습은 에클레시아로서 현재 우리가 이해왔던 교회와는 다름을 정의한다. 그에게 있어 에클레시아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한 이끌림(먼저 된다.) 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사귐과 교제로서 오순절 성령의 강림으로부터 계시 사역을 장식하는 위대한 구원의 역사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교회라는 거룩한 제도가 존재한다는 닭이 먼저냐? 혹은 선택받은 신앙인 개인들의 모임이냐? 는 달걀이 먼저냐는 식의 구분은 교제로서의 에클레시아를 똑바로 이해하지 못 하는 편협적인 방법임을 표명한다.
정리하자면 에클레시아는 삼위일체적인 관계로부터 이해되어진다. 아버지와 아들의 교제의 모상을 예수그리스도의 중재와 성령의 교제(묶음-끈의 기능)를 통해 가능하도록 하며, 이는 다른 사회적인 교제나 공동체와 구분되는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 진리는 곧 사귐이며, 사귐은 곧 진리이다. 고로 사귐을 통해 진리는 드러나게 되고, 표현되어 진다. 사귐으로서 존재하는 에클레시아는 어떠한 교리나 신조에 의해서 이해되어짐이 아닌 사귐을 통해서만 이해되어진다. 이는 곧 참여를 야기하게 되고, 개인으로부터 탈출하게 함(개방성)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참여하게 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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