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지역조사보고서 과천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지역조사는 전통적으로 사회문제의 해결이라는 실천적 접근의 특색을 가진다. 전통적으로도 사회조사는 노동자의 생활내용에 주목한 가계조사, 빈곤자(층)의 생활실태를 지역사회의 넓은 범위에서 파악하려는 지역조사의 두 개 분류로 나뉜다. 과학적인 지역빈곤조사의 선구가 된 19세기말 C. 부스의 런던조사나 B. S 라운트리의 요크시 조사는 정책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 조사방법 상에서도 이와 같은 지역조사의 계보는 오늘날에도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지역조사는 사회문제의 해결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복지의 의미에서 지역의 특성을 파악하고, 이해함으로써 더 나은 서비스와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한 의의가 있다.
(네이버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cid=476&docId=472913&mobile&categoryId=476)
Ⅱ. 과천시의 특성
1. 과천시의 유래 및 연혁
▶ 삼국시대
삼국시대엔 고을과 고을 사이의 땅 경계가 오늘날과 같이 뚜렷하지 않았다. 어느 고을(郡縣)이라고 하면 읍내(邑內)와 같은 마을을 중심으로 해서 진산(鎭山)의 산줄기를 따라 이루어지는 일정 지역이 대략 그 영역이 되는 것이 일반이었다.
따라서 동사힐 또는 율 목(栗木)으로 불렸던 고구려 시대의 과천(果川) 영역이 어디서 어디까지라고 정확히 짚어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신라 경덕왕 때(757) 율목군을 율진군(栗津郡)으로 고쳤다는 기록으로 보아 대략 율진군이었던 곳이 그 영역이었을 것이라고 추측될 뿐이다.
▶ 통일신라시대
고구려 땅이었던 과천은 신라가 문무왕 이후 한반도를 지배하게 됨에 따라 그 관할 안에 들어가게 됐다. 『삼국사기』 권 35에 보면 율진군(栗津郡)은 본래 고구려의 율목군(栗木郡)을 경덕왕이 개명한 것인데 (『삼국사기』가 간행된 고려시대에는) 과주(果州)라 부른다 고 기록되어 있고, 거기에 속한 영현이 곡양현(穀壤縣), 공암현(孔巖縣), 소성현(邵城縣) 등 셋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당시의 과천(果川:栗津郡)은 상당히 큰 영역이었다고 할 수가 있다. 곡양(穀壤)은 현 서울특별시 구역중 구로구의 가리봉동, 구로동, 독산동, 시 흥동, 신도림동과 관악구의 봉천동, 신림동, 동작구의 상도동, 대방동, 신대방동, 영등포구의 당산동, 대림동 도림동, 문래동, 신길동, 양평동, 양화동, 그리고 경기도의 광명시(옥길동 제외) 등이 모두 여기에 포함되어 이것만으로도 무척 넓은 지역이다. 공암(孔巖)은 지금 의 서울 강서, 양천구 일원이며, 소성(邵城)은 인천시와 부천시 일부및 시흥시 일부를 포함하고 있다.
참고문헌
Ⅵ. 참고문헌
-네이버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cid=476&docId=472913&mobile&categoryId=476
-과천시청 http://www.gccity.go.kr
-과천시 복지정보 http://welfare.gccity.go.kr/
-뉴스기사
중부일보, 기호일보 뉴스기사
“황순식 과천시의회 의장 화훼센터, 관광단지 등 개발 사업 전면 재검토”
(http://www.joongboo.com/news/articleView.html?idxno=832158)
“정부청사 이전에 상권 ‘휘청’ 과천시 자구책 마련 팔 걷어...”
(http://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1357)
-과천종합사회복지관,무한돌봄센터
http://www.gcwelfare.or.kr/php/board.php?board=g51&config=&command=body&no=5370
-안양시 무한돌봄센터
http://blog.anyang.go.kr/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