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형 자기 계발 성공한 여성 CEO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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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21세기형 자기 계발 성공한 여성 CEO사업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샤넬은 1883년 프랑스 남서부의 소뮈르(Saumur)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어머니와 사별하고 아버지에 의해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에 맡겨졌다. 보육원 시절 직업 교육의 일환으로 바느질을 배웠고, 이렇게 습득한 바느질 기술은 훗날 샤넬이 패션 사업을 시작해 그녀의 패션 감각을 구체화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샤넬은 나중에 보육원을 나와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는데, 이때부터 샤넬 로고에 사용된 두 개의 ‘C’의 출처인 ‘코코(Coco)’라는 별칭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샤넬이 거짓말을 통해 숨기고자 했던 그녀의 이러한 불우한 성장 과정과 틀에 매인 교육의 부재는, 그녀가 기존의 관습을 깨고 시대적 변화의 흐름에 맞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스타일을 제안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샤넬은 몸을 꽉 조여 억압했던 코르셋에서 여성들을 해방시켰다. 무릎 근처까지 올라 간 치마를 통해 여성들을 땅에 닿는 긴 치마로부터 해방시켰고 편하고 활동이 자유로운 여성용 바지를 만들었다. 또한 손가방에 끈을 달아 어깨에 멜 수 있게 해주었다. 지금은 당연시되는 여성 의상들이지만 당시로서는 혁명이자 해방이었다. 샤넬은 여성의 사회 활동이 확대되는 시대 분위기 속에서 단순하면서 편하고 실용적인, 그러면서도 우아하고 기품 있는 스타일을 선보였다. 그리고 그 옷들은 바느질과 마무리가 완벽해 입는 이들마다 극찬했다.
2.메리 바라 Mary Barra (GM)
바라 CEO는1980년 GM에서 인턴으로 근무를 시작해 내부 승진을 거듭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당시 회사 부설 자동차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18세 소녀였던 그녀는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근무했던 폰티액 생산라인에 투입됐을 당시 어린 여성으로서 외롭고 힘들었다.”며 당시 경험을 털어놨다.
엔지니어 출신인 그는 개발 담당 부사장으로 일하면서 자동차 모델별 담당 임원 수를 3명에서 1명으로 줄이고, GM의 자동차 플랫폼 종류를 단순화하고 호환 부품 수를 줄이게 해 생산성을 높였다. 자녀 둘을 둔 바라는 GM의 폰티액 생산라인에서 기술직으로 39년간 일한 아버지를 이어 2대째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제너럴모터스 가족’이기도 하다.
GM이 495억 달러의 구제 금융을 졸업하고 유럽 시장 판매법인 철수를 결정한 시점에서 바라 부사장을 CEO로 내정한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GM은 여성 CEO 선임을 통한 이미지 제고와 새로운 세대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한 애널리스트는 이전처럼 재무전문가 출신이 아닌 기술전문가를 임명한 것에 대해 “돈 만드는 회사에서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라는 GM의 믿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관련 연구기관 에드먼즈닷컴의 미셸 크랩스는 “여성이 미국 최고 자동차업계의 수장에 오른 것은 대단한 일”이라며 “특히 메리 바라는 매우 유능한 자동차업계 경영인으로 그동안 여러 번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왔다”고 평가했다.
3.인드라 누이 Indra Nooyi (펩시)
세계적인 리더십의 소유자 인드라 누이가 주목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보수적인 힌두교 집안에서 태어난 인도 여성’이라는 것이다. 인도에서 태어나 대학을 나온 이방인으로, 또 두 딸의 어머니로 백인 남성들의 장막을 뚫고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인도 남부 첸나이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인드라 누이는 마드라스 인도경영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했다. 어린 시절 그녀의 어머니는 매일 자식들에게 ‘앞으로 자라서 뭐가 되고 싶은지’를 물었고, 그 꿈을 키우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그녀는 대학 졸업 후 인도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1978년 훌쩍 미국으로 건너와 예일대 경영대학원에서 다시 경영학석사(MBA)를 받고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모토로라 등에서 전략기획 분야를 담당하며 꿈을 실현시켜 나갔다. 인드라 누이는 만년 2등이던 펩시코를 업계 1등으로 만드는 데 가장 크게 공헌한 인물로 꼽힌다. 펩시는 아침에 마실 수 있는 음료를 개발하기 위해 당시 최고의 주스 브랜드였던 트로피카나를 1998년에 인수했다.
“사실 콜라를 아침에 마시긴 그렇잖아요. 그래서 아침에 마실 수 있는 음료가 필요했어요. 당시 트로피카나가 최고의 주스 브랜드였어요.”
특히, 펩시코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게토레이로 유명한 퀘이커 오츠(Quaker oats)의 인수였다. 그녀는 2001년 퀘이커 오츠(Quaker Oats)를 인수하기 위해 절에 다녀가기도 했다.
“펩시코로서는 회사의 운명을 바꿀 만한 것이었죠. 그래서 신께도 도움을 받아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절에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