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의 통일과 고려의 건국

 1  후삼국의 통일과 고려의 건국-1
 2  후삼국의 통일과 고려의 건국-2
 3  후삼국의 통일과 고려의 건국-3
 4  후삼국의 통일과 고려의 건국-4
 5  후삼국의 통일과 고려의 건국-5
 6  후삼국의 통일과 고려의 건국-6
 7  후삼국의 통일과 고려의 건국-7
 8  후삼국의 통일과 고려의 건국-8
 9  후삼국의 통일과 고려의 건국-9
 10  후삼국의 통일과 고려의 건국-10
 11  후삼국의 통일과 고려의 건국-11
 12  후삼국의 통일과 고려의 건국-12
 13  후삼국의 통일과 고려의 건국-13
 14  후삼국의 통일과 고려의 건국-14
 15  후삼국의 통일과 고려의 건국-15
 16  후삼국의 통일과 고려의 건국-16
 17  후삼국의 통일과 고려의 건국-17
 18  후삼국의 통일과 고려의 건국-18
 19  후삼국의 통일과 고려의 건국-19
 20  후삼국의 통일과 고려의 건국-20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후삼국의 통일과 고려의 건국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후삼국의 통일과 고려의 건국
*
목 차
서론
통일신라말기의 모습
고려의 후삼국 통일과정
태조의 여러 시책
태조의 정치이념과 사상
고려 통일의 의의
결론
*
서 론
고려의 후삼국 통일과정은 바로 고려와 후백제 사이의 쟁패 과정이었다. 新羅(신라)는 이미 무력해진 데다가 甄萱(견훤)과 弓裔(궁예)의 침략으로 인하여 영토가 날로 줄어들어 이 때에는 이미 나라의 형태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고려의 남진정책과 후백제의 동진정책의 충돌이 빚어낸 한국사상 최대의 내란기였던 약 50여 년의 後三國時代(후삼국시대)가 수습되고, 太祖 王建(태조 왕건)이 전장에서 말을 달리기 40년 만에 이룬 새로운 통일의 역사 전개과정을 살펴보도록 하자.
*
1. 신라 말기의 모습
*
신라 말 왕 계보
36대 혜공왕(惠恭)(765~780) 37대 선덕왕(宣德)(780~785) 38대 원성왕(元聖)(785~798) 39대 소성왕(昭聖)(798~800) 40대 애장왕(哀莊)(800~809) 41대 헌덕왕(憲德)(809~826) 42대 흥덕왕(興德)(826~836) 43대 희강왕(僖康) (836~838) 44대 민애왕(閔哀)(838~839) 45대 신무왕(神武)(839) 46대 문성왕(文聖)(839~857) 47대 헌안왕(憲安)(857~861) 48대 경문왕(景文)(861~875) 49대 헌강왕(憲康)(875~886) 50대 정강왕(定康)(886~887) 51대 진성여왕(眞聖)(887~897) 52대 효공왕(孝恭)(897~912) 53대 신덕왕(神德)(913~917) 54대 경명왕(景明)(917~924) 55대 경애왕(景哀)(924~927) 56대 경순왕(敬順)(927~935)
*
혜공왕 : 대공의 난, 김지정의 난 등으로 나라가 어지러웠으며 선덕왕에게 피살됨.
애장왕 : 13세에 즉위. 섭정하던 숙부 김언승(金彦昇)에게 왕위 빼앗기고 시해됨.
헌덕왕 : 조카를 죽이고 왕이됨.
신무왕 : 민애왕을 죽이고 왕이 되었으나, 수개월 뒤 반대파인 죽은 이홍(利弘)의 저주를 받아 죽었다함.
경애왕 : 927년 포석정에서 연회를 하다가 견훤의 습격을 받자 자살함.
경순왕 : 경애왕이 죽은 후 견훤에 의하여 즉위 하였으나, 935년에 왕건에 항복하여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결혼하여 경주 사심관(事審官)으로 여생을 보냄.
2. 고려의 후삼국 통일 과정
*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