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객 김광석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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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객 김광석 보고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가객: 우리나라 전통 가악(歌樂) 중 가곡(歌曲)·가사(歌詞)·시조(時調)를 잘 부르는 사람
1. 김광석의 유년~학창 시절
김광석은 1964년 1월 22일 대구 대봉동 번개전업사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김광석이 태어나기 전 아버지 김수영은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 무렵 대구시내에서는 초, 중, 고교의 교원들이 노조결성을 준비했고 당시 김수영은 지부장으로 교원노조결성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곧 민주당 정권의 거센 탄압을 받아 해체되었고(교원노조사태) 김수영은 해직되어 교단에 다시 서지 못했다. 비록 김광석이 태어나기 이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김광석이 사회적 모순에 일찍 눈을 뜨게 된 것은 이런 가정사와 무관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항상 남들에게 피해주는 일은 하지 말고 경우 바르게 살아갈 것을 말씀하셨어요. 사회라는 체계는 보다 나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이나 위로가 되기보다는 종종 피해를 입히더군요. 대학을 졸업할 무렵 이러한 현실이 제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죠. 사람들과 함께 따뜻함을 나누며 살아가려던 제겐 다행히도 음악이 있었습니다.” - 월간[샘터](1995.9)
초등학교 입학 전에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창신동(현재는 종로구 관할)으로 이주하여 창신 초등학교, 경희중학교, 대광고등학교를 나왔으며, 중학교 시절 현악부 활동을 하였고 이때 선배들로부터 바이올린을 다루고 악보를 보는 법을 배웠다. 대광고등학교 시절 합창부로 활동을 하면서 음악적 감성을 키웠다.
2. 노래를 하게 된 계기(대학시절)
대학교 1학년 시절 카페에서 통기타를 치며 아르바이트로 노래를 할 때만 해도 김광석에게 노래라는 것은 그저 감정을 다스리고 표현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예수’라는 민중 가요집을 보게 된다. 그 책에는 중간중간에 시도 적혀있었고, 노래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 악보와 가사가 한 이백여 곡쯤 실려있었다. 그 중에서도 ‘야금야금’이라는 제목의 노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세상을 향해 노래를 부르게 되었던 결정적 계기는 ‘못생긴 얼굴’이라는 가사를 보고 나서이다. 자신의 학창시절 가정형편이 힘들었던 처지를 대변하는 가사들을 보고 골방에서만 듣던 노래들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부르는 노래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그런 노래를 부르는 곳이 있다는 친구의 말에 친구를 쫓아 ‘연합메아리’(1977년 서울대 학생들에 의해 ‘건강한 대학인의 노래’란 취지로 결성된 ‘메아리’는 80년대에 접어들어 민중가요, 즉 사회참여적 저항가요라는 방향으로 음악성의 가닥을 잡는다.)라는 대학 연합동아리에 가입하게 된다.
80년대의 시대적 배경: 대학생을 비롯한 여러 계층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던 시기. 계엄령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1980년 5월18일 민주화 운동과 같은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전두환 정부는 무력으로 진압한 뒤 통치권을 장악하였다. 이에 국민의 민주화 운동은 더욱 확산되게 되었다. 또한 1987년 4월13일 호헌조치를 어기고 전두환이 장기 집권을 하려 하자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났고, 국민의 요구가 수용되어 6.29 민주화 선언이 발표되었다. 이처럼 1980년대는 독재정권의 탄압과 이에 저항하는 각계각층의 민주화 운동이 활발히 일어났던 시대이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1984년 교회를 같이 다니던 형님 중 한 분이 통기타 업소에서 노래를 부르던 분이었는데 그곳에서 구경하는 김광석에게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를 것을 권했고 그때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연주와 노래를 했다고 한다.
어느 날 ‘김민기’라는 김광석의 선배가 어린이 동화를 바탕으로 한 라는 뮤지컬의 음반 작업을 하자고 권유를 한다. 하지만 그 당시 작업했던 음반이 심의를 못 받아 음반 발표를 못하게 되었다. 음반 회사에서 돈을 빌려다 녹음비로 사용했지만 음반을 내지 못해 빚만 쌓이게 되었다. 김광석은 한 시대를 같이 사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느낌이 다를 수 있다는 것에 분노를 떠나 허탈했다고 말한다. 이 때 같이 를 작업한 선배들과 노래 팀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다. 김광석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서 여러 차례 행사나 노래 공연을 하게 되었다.
(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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