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국가경영 세종시대 과학기술의 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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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종대왕의 국가경영 세종시대 과학기술의 발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한 업적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업적을 쌓았다. 집현전을 설치하여 능력 있는 훌륭한 인재를 등용시키고 조세를 평등하게 하여 백성들의 부담을 줄여주었고 농사법을 개량 시켜 농업기술의 계몽과 권장에 힘썼으며 노비의 지위를 개선시켰고 국가의 국권을 확립시키고 영토를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에서도 아악을 부흥시키고 정간보를 창간하는 등 다양한 업적을 세웠다.
그 중 세종대왕 하면 누구나 먼저 떠 올리는 것은 한글의 발명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뛰어난 업적은 과학기술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역사상 그의 재위기간 만큼 과학기술이 크게 발달한 시기가 없었다고 까지 말 할 수 있다.
세종시대의 과학기술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15세기에 서양은 산업혁명 전이라 동양보다 과학이 뒤떨어졌으며 서양이 동양보다 과학이 앞선 것은 18세기부터라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특히 천문학은 당시 중국이나 아랍을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천문역학 말고도 당시의 과학기술의 두드러진 업적으로는 화기, 농업, 활자 인쇄, 의약 분야의 기술이 크게 발달했고, 도량형과 음악의 과학적 정리가 크게 진전되었다.
본론
1. 천문학
당시 천문학의 꽃은 ‘역법’ 즉, 천체의 운행과 위치를 살피고 예측하는 방법이었다. 쉽게 말하면 달력을 만드는 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옛날에는 일식과 월식의 시간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으로 역법(曆法)의 정확성을 검증하였다.
세종대왕은 천문역법을 세우기 위해 이순지와 정인지등 집현전 학자들에게 한양의 북극 고도를 표준으로 별자리를 관측하고 자주적으로 역법을 개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당시 역법을 위해 일했던 사람은 이순지와 김담이었고 정초와 정인지는 중국의 옛 서적을 연구하였으며 김돈과 김빈은 천문 기기를 설계하였다. 그리고 세종대왕의 7년의 걸친 천문기기 제작 사업은 주로 이천과 장영실이 진행하였다. 또한 천문관측을 위해서 세종은 고려 시대부터 왕립 천문기상대 역할을 하던 서운관(書雲觀)의 이름을 관상감(觀象監)으로 바꾸고 경복궁 경회루 북쪽에 간의대(簡儀臺)를 세워 여기에 천체 관측 기구인 혼천의(渾天儀), 동짓날의 정확한 시각과 주기를 찾아내는 규표(圭表), 방위 지정표인 정방안(正方案)과 같은 기구를 설치하고 별자리를 비롯하여 일출과 일몰, 일식과 월식, 혜성과 행성의 운행을 관찰토록 했다.
그래서 경복궁에 ‘대간의’라는 천문대를 건설하고 여러 가지 관측기기를 제작해 세종 24년인 1442년에 완성한-10여 년의 연구에 걸쳐 역법서인 ‘칠정산’ 내-외편을 편찬한 것이다. 왕조시대에 달력은 황제가 내리던 것이었는데 세종의 자주적인 역법 계산은 중국 황제의 권위를 거스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동지 때마다 사신이 새해 관련 하늘의 정보를 중국으로부터 받아오는 것이 못마땅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맞지도 않았으므로 칠정산 내-외편을 완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나라 고유의 책력 체제가 확보된 것인데 이는 한글 창제 못지않은 대왕의 치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칠정산의 편찬을 두고, “다른 민족이 오래 전부터 하던 일을 우리 민족은 이제야 겨우 처음으로 하게 되었나 보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1442년에 이 정도의 천문학 계산을 할 수 있던 나라는 중국과 아라비아 외에는 조선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즉 당시 우리 민족의 천문학은 세계 최고의 수준에 올라 있었던 것이다.
*칠정산내-외편
은 원나라의 수시력(授時曆)과 명나라의 대통력(大統曆)을 서울의 위도에 맞게 수정, 보완한 것이고, 은 당시로는 최신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아라비아 천문학을 흡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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