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윤리 학사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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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윤리 학사 장자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 장자의 이름은 주(周)요, 송의 몽현(蒙縣) 사람이며, 일찍이 칠원리(漆園吏) 관리가 되어 초나라 위왕(威王)의 부름을 받았으나 물리치고 나아가지 않았다. 노자처럼 세상사에 분개하여 은둔한 사람이며, 장자는 대체로 맹자보다 시대적으로 조금 앞선다. 장자는 비록 유가를 비난하고 있기는 하나 맹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중국윤리학사』에 따르면 맹자가 양·주(楊周)라고 말하는 것은 실제 곧 장자를 일컫는 것
"양자(楊子)는 자기를 귀히 여긴다.", "본성을 온전히 하여 진리를 보존한다면 물욕으로써는 사람됨에 누를 끼치지 아니한다." "내가 천하를 위하여 할 일이 없다." 는 양주의 말에 대해서 맹자는 양주는 위아주의(爲我主義)를 취하니 자기 몸의 털 하나를 뽑아서 천하가 이롭게 된다 하여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양주와 묵자의 말을 천하 사람들이 믿는다. 양자의 사상은 곧 임금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로가 발전을 막고 "걸왕(傑王)에 빠졌다. 군신의 의리를 폐했다. 그 몸을 깨끗이 하려고 해서 대륜을 어지럽혔다"고 하면서 양자를 비판한 것과 같은 의미이다.
* 위아주의(爲我主義) - 재물이나 명예와 같은 외물 때문에 자신의 온전한 삶이 구속되어서는 안 된다.
☞ 이처럼 장자의 사상은 유가 학자들이 말한 도덕과는 판이하게 달랐음.
『중국철학사』에 따르면 동시대인이었으면서도 두 사람은 논쟁을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장자의 학은 양주의 학이 더욱 진보한 것이었으므로 맹자의 관점에서 보면 장자도 양주의 추종자였고, 장자 역시 맹자를 공자의 추종자로 보았던 것이다. 맹자의 양주, 묵적에 대한 반대 는 포괄적인 반대였으며, 장자의 유묵에 대한 공박 역시 포괄적인 공박이었다. 따라서 맹자는 양주만 지목했고 장자는 공자만 지목했을 뿐, 맹자와 장자 두 사람이 반드시 서로 몰랐던 것은 아니다.
◈ 학파
한유 曰, 자하의 학문은 전자방(田自方)이 이어받았고 전자방의 뒤를 장자가 이었다. 그 학설의 의미는 노자가 이미 나와서 남방에서 성행하였다는 것이다. 장자는 초나라와 위나라 시대에 태어나서 노자의 사상을 전해 받고 그 사상들을 확대시켜 나갔다. 특히 그는 노자의 권모 술수적인 관점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견지에서 자신의 사상을 전개시켜 나갔다. 또한 장자는 불가의 학설에도 관여함으로써 정치계를 초월하여 순수히 철리(哲理)를 연구했던 대사상가이다. 한나라 초에는 황(黃)·노(老)의 설이 떠들썩했고 위·진 시대이후로는 노·장의 설이 떠들썩했다.
* 철리(哲理) - 아주 깊고 오묘한 이치
장자의 자서(自敍)
장자의 글이 현존하는 것 33편 (내편 7편과 외편 15편, 잡편 1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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