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 유물조사 창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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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창덕궁(昌德宮)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번지에 위치한 조선의 궁궐이다. 1963년 사적 제122호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550,916㎡이다. 당시 종묘(宗廟)·사직(社稷)과 더불어 정궁인 경복궁(景福宮)이 있었으므로, 이 궁은 하나의 별궁으로 지어졌다. 태종5년(1405) 10월에 공사가 끝났으며, 10월 25일 창덕궁으로 이름 붙였다. 이 때 완성된 창덕궁의 규모는 외전 74칸, 내전 118칸이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창덕궁,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 2015.05.03.
임금들이 경복궁에서 주로 정치를 했기 때문에, 창덕궁이 처음부터 크게 이용되지는 않았다. 창덕궁은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 조선왕조의 가장 중심이 되는 정궁 역할을 하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경복궁·창경궁(昌慶宮)과 함께 불에 타 버린 뒤 제일 먼저 다시 지어졌다. 창덕궁이 먼저 복구된 까닭은 그전까지 임금들이 주로 거처하던 곳이 창덕궁이었으며, 경복궁은 풍수지리상 불길하다는 의견이 가세되었기 때문이다. 창덕궁의 복구는 선조 말에서 광해군 초까지 행해졌다. 그러나 중건하고 약 10년 후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외전(外殿)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고 말았다. 이후 25년간 방치되었다가 인조25년(1647)에 복구되었다. 여러 차례 소실이 있었지만 대체로 원래의 궁궐 규모를 잃지 않고 유지되었다.
임금과 신하들이 정사를 돌보던 외전과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내전(內殿), 그리고 휴식공간인 후원(後苑)으로 나누어진다. 문화재청, 창덕궁,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3,01220000,11, 2015.05.03.
효종대에 만수전(萬壽殿)이 건축되었고, 현종대에는 집상전(集祥殿)이 건축되었다. 숙종대에는 제정각(齊政閣)을 건축해서 각종 천문기기를 설치했고, 후원을 본격적으로 꾸몄다. 정조는 학문을 중심에 둔 정치를 구현키 위해서 시설물을 건축했다. 규장각(宙合樓)을 중심으로 봉모당(奉謨堂), 개유와(皆有窩), 열고관(閱古觀), 서고(書庫), 서향각(書香閣) 등을 세워 역대 임금의 자료와 새로 구입한 도서류를 보관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창덕궁,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 2015.05.03.
또 세자를 위한 공간도 크게 확장했는데, 중희당(重熙堂)과 수강재(壽康齋)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순조 3년(1803) 12월 선정전 행각(行閣) 궁궐, 절 따위의 정당(正堂) 앞이나 좌우에 지은 줄행랑.
에서 시작된 화재가 인정전(仁政殿)을 비롯한 내전의 상당한 부분을 불태웠고, 곧이어 재건공사가 시작되었다. 창덕궁의 마지막으로서의 대화재는 1917년 11월에 일어났다. 대조전(大造殿)을 비롯한 침전에 불이 나서 희정당(熙政堂) 등 19동의 건물이 다 탔는데, 1920년에 일본은 경복궁의 교태전(交泰殿)을 헐어다가 대조전을 다시 짓고, 강령전(康寧殿)을 헐어서 희정당을 다시 짓는 등 경복궁을 헐어 창덕궁의 건물들을 다시 지었다. 이때의 재건공사는 창덕궁의 원래 모습을 많이 바꾸어 놓았다. 자동차 차고와 전등 같은 근대식 설비와 가구의 도입도 건축의 면모를 바꾸는데 영향을 주었다.
정궁인 경복궁이 질서정연한 대칭구도를 보이는데 비해 창덕궁은 지형조건에 맞추어 자유로운 구성을 보여준다. 창덕궁과 후원은 자연의 순리를 존중하여 자연과의 조화를 기본으로 하는 한국문화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장소이다. 지금 남아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가 탁월한 점에서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창덕궁 돈화문(敦化門)
돈화문(敦化門)은 창덕궁의 정문이다. 서울 종로구 율곡로 99번지에 위치한다. 보물 제383호이며 정면 5칸, 측면 2칸의 중층의 다포(多包) 기둥과 기둥 사이에 공포를 만들어서 끼워 넣음으로써 건물을 보다 크고 화려하게 만든 양식.
식 우진각지붕의 건물이다. 좌우 협칸 정면이 여러 칸으로 된 건물에서, 중앙에 있는 칸 다음에 위치하는 칸.
을 벽체로 막아 3문형식 이다. 중앙은 어문으로 왕의 전용 문이고, 좌우문은 당상관(堂上官) 조선시대 관리 중에서 문신은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 무신은 정3품 절충장군(折衝將軍) 이상의 품계를 가진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