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가 남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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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육사가 남긴 작품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이육사가 남긴 작품은 시 36편, 소설 2편, 수필 9편, 일반 평론 7편, 문학평론 5편, 번역 작품 2편과 기타 잡문 6편 등 총 67편이다. 이육사는 시인으로서 시작을 한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가 이원록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시가 다른 작가들처럼 많지가 않다. 하지만 그의 36편 밖에 안 되는 시는 당대의 어느 시인 보다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두루 알려진 사실이다.
이육사의 시는 양적으로는 얼마 되지 않지만, 많은 주목을 받고 있고 많은 논문이 발표되고 있다. 그 이유는 작품의 가치 자체에도 있지만 그보다도 탄압이 극심했던 일본 군국주의와 주요 작가들이 친일 문학으로 빠지고 있을 식민지 말기에 그만은 끝까지 독립투사로서의 지조를 지키고, 일제에 의해 수차례 체포, 투옥되는 고난을 겪으면서 마침내 북경 감옥에서 마침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 한 체 옥사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육사는 1930년대 민족시인, 지절시인으로 이름이 높다. 그는 처음부터 남다른 시인이었다. 그는 처음 부타 문학가로서 출발을 한 것이 아니라 독집운동이었다. 짧은 인생을 독립운동에 바치다 옥사한 시인이다. 그의 인생에서 독립운동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시인이다. 그렇기에 그의 시는 거의 모든 면에서 저항의식이 반영되어있다.
즉 이육사는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서 1925년 형 원기, 아우 원규와 함께 대구에서 의열단 의열단: 1919년 설립된 무력항일투쟁운동 단체
에 가입했으며 1927년에는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 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되어 대구 형무소에 투옥되어 제수 번호 264번을 옥살이를 하였다. 그 후에도 1927년 광주 학생운동, 1930년 대구 격문사건에 연루되는 등 모두 17차에 걸쳐서 옥고를 치르며 독립운동을 하다가 1942년 가을 잠시 서울에 왔을 때 일본 관헌에게 붙잡혀 북경으로 송치되고 1944년 북경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 신석초 (이육사의 생애와 시) 2000>
본고에서는 이육사의 저항의식이 시속에 어떻게 녹아 있는지를 알아 볼 것이고 이와 같이 이육사 시속에 자신이 고향에서 정착해 살지 못했기에 느꼈던 실향 의식이 어떻게 시속에 나타나고 있는지 알아 볼 것이다.
이 중에서도 이육사의 저항의식을 독립운동과 연관시켜 연구를 할 것이다.
Ⅱ.생애와 작품
1.연보
1904년
5월 18일(음 4.4)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당시 원촌동) 881번지에서 진성이씨 이가호(李家鎬, 퇴계 이황의 13대손)와 허형(許衡)의 딸인 허길(許佶) 사이에 차남으로 출생, 본명 원록(源祿), 두 번째 이름이 원삼(原三), 자는 태경(台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