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18 장미자 편

 1  논어 18 장미자 편-1
 2  논어 18 장미자 편-2
 3  논어 18 장미자 편-3
 4  논어 18 장미자 편-4
 5  논어 18 장미자 편-5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논어 18 장미자 편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 이 편은 전체적으로 통일성을 보여준다. 첫 번째로 사연은 제각각이겠지만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세상, 권력, 사람으로부터 비켜나 자기 세계를 일구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즉 이들은 책임을 조용히 내려놓은 인물, 은자들의 이야기이다. 두 번째, 세계관은 다르지만 공자도 조국을 떠남으로써 등장인물들처럼 이별의 고통을 겪게 된다. 공자는 이리저리 떠돌면서 그들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만나지만 그들로부터 조롱을 받고 모두로부터 고별을 알리고 새롭게 비집고 들어갈 틈새를 찾기 위해 광야로 나서지만 환대를 받지 못해 그는 만나는 것마다 떠나야만 했다.
微子(미자)는 去之(거지)하고 箕子(기자)는 爲之奴(위지노)하고 比干(비간)은 諫而死(간이사)하니라 孔子曰殷有三仁焉(공자왈은유삼인언)하니라
미자는 가고 기자는 종이 되고 비간은 간하다 죽었다. 공자 말씀하시기를, “은나라에 세 어진이가 있었다.”고 하셨다.
->서자인 형 미자는 그이의 곁을 떠났고 숙부기자는 노예가 되었고 숙부 비간은 반대 의견을 말하다 살해되었다. 공자는 “은나라에는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 노력한 세 명의 인물이 있었다.”고 하였다.
* 은나라의 멸망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던 세 사람의 사적을 간단히 기록하고 있다. 은나라의 현신인 세 사람은 주의 폭정을 끝내기 위해서 각자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간언을 했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충간을 듣지 않아 미자는 망명을 하였다. 기자는 여러 차례 주임금의 폭정을 만류 했지만 소용이 없자 거짓으로 미친 체하며 노예가 되었다. 비간은 간언을 하다가 비참하게 죽음을 당하였다. 그 세 사람의 취한 행동은 서로 나라의 어지러움을 근심하고 백성들의 안위를 걱정한 마음은 모두 같은 것이기에 공자는 ‘인자’라 한 것이다. 망하는 나라에서 책임 있는 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柳下惠爲士師(류하혜위사사)하여 三黜(삼출)이어늘 人曰子未可以去乎(인왈자미가이거호)아 曰直道而事人(왈직도이사인)이면 焉往而不三黜(언왕이불삼출)이며 枉道而事人(왕도이사인)이면 何必去父母之邦(하필거부모지방)이리오
유하혜가 노나라 사사가 되어 세 번 내치니 사람들이, “당신은 아직 노나라를 떠나지 않았느냐.”고 묻자, “도를 곧게 하여 사람을 섬기면 어디를 간들 세 번 내치지 아니하며 도를 굽어서 사람을 섬기면 어찌 반드시 부모의 나라를 버리겠느냐.”고 하셨다.
->유하혜가 사법관이 되었다가 세 차례나 파직되었다. 주위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당신은 이 나라를 떠나지 않으시오?” 그러자 유하혜가 대꾸하길, “국가의 나아갈 길(원칙)을 곧게 펼치면서 사람(상관)을 모신다면(돕는다면), 어디에 간들 세 차례 정도 쫓겨나지 않겠는가? 나아갈 길을 양보하면서 상관을 도울 생각이라면 무엇 때문에 부모의 나라를 떠나겠는가?”
* 유하혜는 원칙을 고수하다 보면 파면을 피할 수 없으므로, 그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반대로 스스로 원칙을 허물다면 파면을 피할 수도 있고 망명을 떠날 필요도 없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유하혜는 특정 사람에게 충실한 것도 관직에 집착하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현실의 권력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거듭되는 파면에 심리적으로 위축되지도 상처를 받지도 않았던 것이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이 부분만큼은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이 읽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자신의 관직만을 위해 정치를 하는 그들에게 일침을 가해준다고 생각한다.
齊景公待孔子曰若季氏則吾不能(제경공대공자왈약계씨칙오불능)이어니와 以季孟之間待之(이계맹지간대지)하리라하고 曰吾老矣(왈오로의)라 不能用也(불능용야)라한대 孔子行(공자행)하시다
제나라 경공이 공자를 기다려 말하기를, “계씨처럼 대우하지는 못하지마는 계씨와 맹씨의 중간 정도 대우는 하리라.”고 하고 말하기를, “내가 늙었기 때문에 능히 쓰지 못하겠다.”고 하니 공자께서 떠나 가셨다.
->(공자는 세상을 구제할 기회를 얻기 위해 제나라로 갔다.) 제나라의 경공이 공자의 대우문제를 끄집어냈다. “나는 계씨 정도로는 대우해 줄 수 없습니다. 계씨와 맹씨의 중간 정도로는 대우할 수 있습니다.” (얼마 뒤 다른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이미 늙어서 당신을 어디에 쓸 곳이 없구려!” 이 말로 공자는 그 길로 곧장 제나라를 떠났다. 즉 장기 계획으로 정치를 해야 할 공자 같은 인재는 자신은 늙었기 때문에 쓸 수 없다고 변명한 것이다.
齊人(제인)이 歸女樂(귀녀락)이어늘 季桓子受之(계환자수지)하고 三日不朝(삼일불조)한대 孔子行(공자행)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