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어학 산업혁명에 따른 영국 노동자의 계급의식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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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문어학 산업혁명에 따른 영국 노동자의 계급의식의 성장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산업혁명이 세계에서 최초로 일어난 영국은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생산량을 기반으로 제국으로서 세계의 최강자로 군림하기 시작한다. 1815년 워털루 전쟁에서 나폴레옹이 진 이유는 웰링턴 장군 때문이 아니라. 영국의 압도적인 경제력 때문이었다. 워털루 전쟁 당시 영국은 연합군의 전비의 대부분을 도맡고 있었다. 영국의 전비는 프랑스 전비의 세배에서 네 배 사이에 달했다. 이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군복이 영국의 면직물을 수입해서 만들어 졌을 정도로 유럽의 면직물 산업을 영국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 전쟁 후 영국은 향후 60년 동안 ‘세계의 공장’이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로 영국 산업은 막대한 성장을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산업의 성장의 이면에 가혹한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가 숨겨져 있다. 영국의 산업화시기에 어떤 의미로든 노동자들이 출현했고, 그들은 가혹할 만큼의 빈곤을 경험했다. 그러는 와중에 계급에 대한 의식이 노동자들 사이에 생겨났다. E.P 톰슨은 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계급은, 어떤 사람들이 (이어받은 것이건 또는 함께 나누어가진 것이건) 공통된 경험의 결과 자신들 사이에는 자기들과 이해관계가 다른(대개 상반되는) 타인들과 대립되는 동일한 이해관계가 존재함을 느끼게 되고 또 그것을 분명히 깨닫게 될 때 나타난다. 계급적 경험은 사람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맺게 되는, 바꿔 말하면 자기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 속에 들어가게 되는 그러한 생산관계에 의해서 주로 결정된다. 계급의식이란 이러한 경험들이 문화적 맥락에서(in cultural terms) 조정되는 방식, 즉 전통, 가치체계, 관념, 그리고 여러 제도적 형태 등으로 구체화되는 방식이다.” p.7
18세기 후반이 지나면서 전통적인 영국민의 자유적인 사유와 함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경험-빈곤을 경험하든, 노동을 경험하든-이 부르주아의 경험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계급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노동자라는 새로운 계급이 이 시기에 출현하는 것이다. 이 글을 통해 산업화 당시 영국 산업이 어느 분야를 중심으로 성장했는지 알아보고 이런 성장과 함께 영국 노동자들의 계급 형성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1. 산업혁명에 따른 영국 산업의 성장
영국이 가장 먼저 산업화를 할 수 있었던 몇 가지의 이유를 살펴보자. 우선 영국은 17세기에 이미 국민에 의해 왕이 재판을 받아 처형이 된 찰스 1세
이후 ‘사적 이윤과 경제발전’이 정부 정책의 최우선으로 받아들어졌다. 또한 인클로저 운동이 일어나면서(1760~1830) 일을 잃은 농민들이 도시로 대거 유입되어서 공업화에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었다. 농업분야에서도 농업 혁명으로 인해 생산과 생산력이 증대가 일어나 급격한 공업화 시기 급증하는 비농업인구에 필요한 식량을 공급할 수 있었고, 자본 축적을 시킬 수 있는 구조가 갖춰있었다. 농업분야에서는 농업혁명이 뿐만 아니라, 일반 설비들도(도로, 해운, 항만시설) 공업화가 진행될 수 있도록 재편되었다.
기존의 영국의 공업이 면직물 중심이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면직물 공업은 자본주의적 조건하의 공업에 매우 적합했기 때문이다. 1784년 제임스 와트가 회전식 증기기관을 발명했을 때 이를 받아들인 곳은 바로 면직물 산업에서였다. 실을 짜내고, 면을 만드는 산업 과정에선 단순한 기초 증기기관이 필요했다. 더불어 영국의 식민지가 팽창하였고, 식민지에서 노예를 통한 면화 플래테이션 농장을 경영하면서 영국 면직물의 원료인 원면을 무한정으로 제공해주고, 면직물 상품을 인도와 아메리카라는 식민지 시장에 판매하면서 영국의 면직물 공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750년과 1769년 사이에 영국 면제품 수출이 10배 이상 늘어났다. , p.115 에릭 홉스봄
이런 조건들이 영국에서 산업혁명을 일으키게 한 요인들이 되었다. 영국 산업 성장의 특징은 앞에서 보았다시피 면직물 공업을 중심으로 성장하였다는 것이었다. 다른 산업들도 성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타 산업에 종사하는 인구나, 파급력에서 모두 면업을 이길 수는 없었다. “영국으로 수입된 원면의 양은 1785년 1100만 파운드에서 1850년 5억 8800만 파운드로 증가했다. 면직물 생산은 4000만 야드에서 20억 2500만 야드로 증가했다. 면제품은 1816년 과 1848년 사이에 영국 총수출품의 연간 신고액 중 40~50퍼센트를 차지했다. 면업이 번창하면 경제가 번창했으며, 그것이 침체하면 경제 역시 침체했다. 면제품 가격의 움직임에 따라 영국의 무역수지가 결정되었다.” , p.121 에릭 홉스봄
이 밖에 영국 산업에서 주목해야 할 분야가 광업과 철도 분야이다. 영국의 철광 산업은 면업에 비해 크게 비중을 차지하진 못했다. 하지만 산업화의 필수인 석탄을 공급하는 탄광업은 천문학적인 수준이었다. “1800년에 영국은 약 1000만 톤의 석탄, 즉 세계 생산량의 약 90퍼센트 가량을 생산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영국의 경쟁국인 프랑스는 100만톤도 채 생산하지 못했다.” 막대한 석탄을 각지에 효율적으로 운송하기 위해서 ‘철도’만한 것이 없었다. 영국 전역에 철도가 깔렸다. 그 결과 철도가 탄생한 1840년과 1860년 사이에 영국의 철 생산은 68만 톤에서 225만 톤으로 세 배 증가했고, 석탄 생산량도 1500만 톤에서 4900만 톤으로 세 배 증가했다.
이처럼 영국은 면업과 철강, 광업 등의 막대한 생산력으로 대량생산된 제품은 유럽 대륙과 아메리카, 아시아의 식민지에 판매해서 막대한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1789년 포목상 점원이었던 로버트 오웬은 100파운드로 맨체스터에서 공장을 시작하였는데, 1809년 그는 ‘현금으로’ 8만 4000파운드를 내고 다른 공장에 대한 동업자의 권리를 사드렸다. 한 영국인의 정치인의 말처럼 “수백 퍼센트 내지 수천 퍼센트”의 이익을 벌어들었던 것이다. 단지 오웬 한 사람뿐만 아니라 1800년 경 영국 총가구수의 약 15% 정도가 연간 50만 파운드 이상의 소득을 올렸을 정도 , p.118 에릭 홉스봄
로 영국은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참고문헌

상,하, E.P.톰슨
, 에릭 홉스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