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3. 내면의식을 추구한 시
11.13.1. 시문학파가 개척한 길
‘시문학파’가 형성된 1930년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가 이른바 문화통치에서 군국주의적 무단통치로 강화되기 시작한 전환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국내에서는 문화운동만이 가능했는데 1930년을 전후하여 전개된 순수문학운동도 이
못하다고 비판하는 그의 작품에는 그가 어떤 태도로 문학을 대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안수길의 작품 속에 나타난 토속사회도 눈여겨볼 만하다. 토양 속에 민족의 개성을 표출하고 우리 민족 고유의 생명력을 각인시키며, 토속성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가의 손길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문학적 관심을 이끌었던 구보 박태원(구보 박태원)을 들어 그의 대표적 작품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같은 작풉집에 실린 작품들을 비교, 분석함으로 작품에 대한 평가와 함께 당 대의 모더니스트였던 박태원이 어떻게 전향을 하게 되었는지를 미약하게나마 유추해 보기로 한다.
우선 본론의 전개
문학의 사회적인 기능에만 치중하던 시각에서 벗어나 문학 그 자체의 순수성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된 것이 1930년대 문단을 풍성하게 했던 가장 직접적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1920년대 이광수의「무정」으로 대표되는 계몽주의적 근대소설과 사상적 굴레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식과 내용으로 분
작품이 함유하고 있는 내재적이고 심미적인 가치나 체계를 외면한 나머지, 문학사나 소설사를 무미건조한 일반 문화사의 일부로, 또는 상상력의 굴절로 자라왔다. 이재선, 『한국현대소설사』(1979, 홍성사)
김우종의 소설사가 작가의 문학 활동을 중심으로 하여 시대적 순서에 따라 서술한 것이
작가가 치안국에 소환되는 수모를 겪었던 일화로 유명하다. `중공군 40만 명보다 더 무서운 해독을 끼치는 소설`이라든가, `북괴의 사주로 남한의 부패상을 샅샅이 파헤치는 이적소설`이라는 비난은 그런 당대의 충격과 혼란을 짐작케 해주는 사례들이다.
그 동안 이 작품은 순수문학이나 본격문학에
소설 한편을 완성하여 이듬해(1935년)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다. 당선작은 '화랑의 후예.' 심사위원이었던 김동인은 심사소감에서 "경쟁자 없이 단연 수위에 올리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라고 격찬한다. 그 해부터 김동리는 해인사에 딸린 작은 절인 다솔사에 주로 머물면서 가끔 경주와 서울을
1. 서론
소설은 사건의 진술에 머물지 않고 그 사건의 이면에 숨은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 목적이다. 이 의미가 바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며, 그 하고 싶은 말을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하여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주제란 하나의 문학작품의 근본적 의도, 본질적 개념, 지배적 태도, 일관된 의의, 사상
이시기에 문학사적으로많은고통과 어려움이 있었다. 이른바 자유를 억압당한 채 붓을 꺾거나 민족을 위한 바른 소리를 해야만 했던 시기이기였겠지만, 슬프게도 우리의 문학사는 ‘친일문학’이라는 얼룩을 가지게 되었다. 허나 다행스럽게도‘친일문학’에 대한 반성의 모습과 세태에 대한 풍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