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준 목사에 대해서 살펴보기 전에 살펴봐야 할 책이 있다. 김경재씨가 쓴 김재준 평전(성육신 신앙과 대승 기독교)라는 책이다. 이 책은 김재준 목사님의 업적과 사상을 알 수 있고 그를 평가한 내용이다.
저자 김경재 목사는 이 책은 장공의 일생을 통시적으로 조명하면서 독자들이 한국개신교사
장공 김재준 목사는 조선 왕조가 이미 기울어 일본의 조선 합방이라는 식민 지배 야욕이 차근차근 진행되던 1901년 9월 26일, 함경북도 경흥군 상하면 오봉동 일명 ‘창꼴’ 마을이라고 부르는 두만강가 산골 마을에서 김호병 씨와 채성녀 씨를 부모로 하여 이 세상에 태어났다. 서당 훈장이셨던 부친으
1. 김재준
1.1 김재준의 생애
1901년 함경북도에서 출생하였으며 그의 가문은 독실한 유교 가정이었다. 그래서 유학에 뛰어나고 글을 잘 썼다. 그는 어릴 때부터 사서삼경, 공자, 맹자 등의 책을 읽으면서 한학을 하면서 자랐는데 글쓰는 실력은 이때부터 형성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1920년에 그는 회심을
자유주의 신학의 유입은 신학의 좌경화로 이어졌고, 한국 기독교를 아류의 기독교로 전락시켰다. 작금의 한국교회의 현실을 바라보면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신학의 정통성을 찾아볼 수 없고, 또한 뿌리 역시 살아진지 오래다. 특히 고신의 물량주의와 부패로 인해서 더욱이 순교자의 정신과 개혁주의
『아빙돈 단권주석』사건
1. 서 론
김재준은 한국 장로교회의 역사를 (1) 1885-1935년 : 선교사라는 보모 밑에서 얌전하게 보호 육성된 유, 소년기, (2) 1936-1945년 : 갑자기 부모를 잃은 고아와 같은 상태에서 온전히 이질적인 일본 사상과 일본 제국주의자에게 시련과 수난을 겪은 시기, (3) 1945-1960년 : 자유
김재준, 송창근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들은 신정통주의의 영향을 받아 정통주의와 자유주의를 동시에 비판하는 칼 바르트 신학의 영향 하에 신정통주의의 입장에 서 있었다. 비교적 보수적인 입장의 신학을 펼치는 한철하도 김재준 목사의 사상은 역시 신정통주의 신학에서 따온 ‘그리스도 중심주의
김재준 교수와 조선신학교의 성서 해설의 오류와 교육이념에 대해 규탄하였다. 이 문제로 장로회는 김재준 목사님의 목사직을 박탈할 것은 소속 노회에 지시하고 사상을 옹호 지지하는 것또한 처벌할 것을 지시했다. 이러한 불법적 결의에 대해서 김재준 목사님은 시대착오적인 그들의 주장을 탄식하
1930년대에 등장하는 것은 자유주의의 발흥이다. 이때 나타나는 신학적인 세 조류는 박형용의 전통주의, 김재준의 진보주의, 정경옥의 문화 자유주의이다. 외의 두 개는 김교신의 무교회주의, 이용도의 신비주의가 30년대에 등장한다. 이때 신학적인 혼란기였다. 이런 혼란이 왜 역사에 등장하는가 하는
김재준 목사님과 같이 소신을 가지고 끝가지 정의와 진실을 위해 싸울 만한 인내가 있는가? 송창근 목사님 같은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이 있나? 아마도 한국기독교장로회라는 교단이 그렇게 수적으로 크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정말 필요한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 힘든 것도 그 이유 중 하나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