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 입문한 뒤로는 주로 교학적 관심(敎學的關心)을 가지고, 대장경을 열람하였으며, 특히 한문으로 된 불경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 즉 불교의 대중화작업에 주력하였다. 그리하여 1910년에는 불교의 유신을 주장하는 논저 《조선불교유신론》을 저술하였다. 36세 때에는 《불교대전 佛敎大典》과 함
시사를 뛰어넘는 시인인 것이다. 실로 만해 한용운의 시는 고전적 정신내용을 탐구하고 발전시켜 전통의 맥락을 계승하고 아울러 은유적 방법론을 확립하여 현대시를 출발시킨 시사적 의의를 갖는다.
침묵으로 저항하고, 저항함으로써, 극복함으로써 존재한, 살아 있는 민족의 시학인 것이다.
한용운의 문학작품에는 시대적 상황과 자신의 불교적 사상과 독특한 표현방식이 조합하여 그의 문학작품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제3절 운율을 통해 작품 분석
먼저 한용운의 <찬송>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고 넘어가자.
1.시 전문
님이여, 당신은 백 번이나 단련한 금(金)결입니다.
뽕나무
대한불교 조계종 기초선원으로 지정되어 갓 득도한 승려들이 참선수행을 하고 있다.
만해마을은 한국문학사의 대표적 시인이자 불교의 대선사, 민족운동가로 활동하며 일제강점 당시 우리민족에게 민족혼을 일깨워준 만해 한용운의 문학성과 자유‧진보‧민족사상을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설
역설 등의 방법과 산문적인 개방을 지향한 자유시로서의 형태를 완성시킴으로써, 현대시적 특성을 지니게 된다. 방언 및 토속어의 애용과 서민적 시어의 활용은 민중정신을 잘 반영한 것이고, 박혜숙 『한용운의 님의 침묵』(미래사. 1991) 147면.
여인을 주체로 그 어조로 나타낸 것은 불교의 관음사상
사상적 기저로서 체계화한 데서 큰 의미를 지닌다. 또한 일제 패망 직전 극도의 궁핍 속에서 심우장 냉돌 위에서 순국하기까지 보여 준 정신의 일관성과 지절은 참으로 귀한 민족적 사표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만해 한용운의 의미는 문학사의 측면에서 드러난다. 시집 [님의 침묵]이 지니는 전통
불교적인 님ꡑ을 자연(自然)으로 형상화했으며, 고도의 은유법을 구사하여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정신과 불교에 의한 중생제도(衆生濟度)를 노래했다. 작품으로는 상기 장편 외에 장편소설인 <박명(薄命)>이 있고, 저서로는 시집 <님의 침묵>을 비롯하여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십현담주
12월 어느날 밤 오세암에서 좌선하던 중 바람에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진리를 깨우쳤다고 한다. 1918년 불교잡지 〈유심 惟心〉을 창간했으며 이 잡지를 통해 불교 논설만이 아니라 계몽적 성격을 띤 글을 발표했고, 또 신체시를 탈피한 신시 〈심 心〉을 발표하여 문학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창씨개명 반대운동과 1943년 조선인 학병출정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일제의 극심한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비타협적인 독립사상을 견지하다가,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기 싫다며 북향으로 지은 성북동 집에서 66세의 나이로 죽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重章)이 수여되었다.
<생략>
불교적 사상관념’이라고 했다.
발표조는 이 ‘누구’의 존재를 명확히 단정하여 밝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용운은 《님의 침묵》의 서문인 <군말>에서 ‘기룬 것은 다 님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 때 님은 조국, 부처, 사랑하는 사람, 자연 등등 하나의 대상만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포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