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이다. 순자는 사회혼란이 극에 달했던 전국시대 말기의 인물로 이전의 제자백가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계승함으로써 유가의 사상체계를 세울 수 있었다. 순자는 시기적으로 선진제자백가 중 후기에 나왔기 때문에 이전의 여러 사상을 비교검토할 수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각각의 학풍의 장단점
Ⅰ. 개요
순자는 공자가 창시한 유학을 체계화하고 이론적으로 재정립하였으며 전국 시대의 여러 사상을 집대성하여 그의 사상사적 위치는 서양 철학사상의 아리스토텔레스에 비유된다. 그러나 그는 성악설을 주장하였다는 이유만으로 후세 유학자들의 혹독한 비판을 받으며 이단이라는 꼬리표가 붙
Ⅰ. 순자의 생애
무령왕 치세의 후반부터 혜문왕 치세에 걸쳐 조나라는 비교적 진나라와 우호적인 관계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진나라 무왕(武王)의 사후에 연(燕)나라에 있었던 공자(公子)인 직(稷)을 소양왕(昭襄王)이라 하여 즉위시킨 것이 바로 무령왕이었다는 점, 진나라의 당면 목표가 한(韓) ·
순자는 여러 면에서 프로메테우스와 유사합니다. 순자 이전의 사상가들은 대부분 모든 것의 근원을 하늘에서 찾았습니다. 만물을 낳아 준 것도 하늘이고, 주재하는 것도 하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은 만물 생성의 근원일 뿐 아니라 인간 도덕의 근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순자는 인간과 하늘의
Ⅰ. 머릿말
공자 이후로 줄곧 동아시아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유교철학 가운데, 순자(荀子)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무척이나 독특해 보인다. 그는 선진(先秦)시대의 유학을 계승한 인물이면서, 동시에 그의 사상 중 일부를 수용했을, 그의 제자들은 법가 사상의 서막을 열었다. 그리하여 그는 유가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