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성주신앙
성주는 가옥신이다. 그것은 조상단지처럼 종가에만 모셔지는 한정된 것이 아니다. ‘외막에도 성주요, 가지(려)막에도 성주’인데 하물며 인간의 주택이면 다 모셔지는 것이 원칙이라 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기 때문에 원래 많은 것이고 아직 그 잔존도 많다. 그 점에서는 삼신단직보다도
미륵불을 하면 생각이 나는 것이 아마도 반가사유상이 먼저 떠오를 정도로 미륵은 불화보다는 불상이 많이 제작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불보다 불상이 많이 제작이 되었던 것은 미륵신앙이 유행을 하게 되면서 라고 하는데, 이런 미륵신앙이 언제 조성이 되었는지, 그리고 미륵관련 경전을
미륵은 용화수 아래에서 3번에 걸쳐 인연있는 사람들에게 설법하는데 이것을 용화삼회(龍華三會) 혹은 미륵삼회(彌勒三會)라 부른다. 그때 세계는 6종(種)으로 진동하고 금색이 되며 미륵은 이 세상에 6만년 동안 머물며 많은 사람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한다.
미륵 하생 신앙은 이렇듯 미래의 구제에
신앙은 혼란한 사회를 틈타 백성들의 삶 속을 파고들었으며, 후에는 민간신앙을 바탕으로 조선 왕조에 반발을 일으키기도 한다. 지금부터 조선 후기 불교계의 동향과 민간신앙이 민중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Ⅱ. 조선후기 불교계의 동향
1. 조선의 억불숭유정책에 대한 불
Ⅰ.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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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건국한 지배층은 성리학(性理學)을 내세우고 유교정치의 기틀을 다지려고 하였다. 이들은 유교윤리와 배치되는 신앙과 종교는 모두 배제하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성리학적 지배이념은 아직 사회의 모든 계층에게 보급되지 않았으며, 불교 ․ 도교 ․ 민간신앙 등은 오랜
序: 기성종교와 차별되는 정감록과 미륵신앙
지금까지 공부한 유교나 불교와는 달리 정감록과 미륵신앙은 일반적으로 기성 종교같은 체계적인 교리나 교단을 가진 종교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나라 역사속에서 민중에 실제로 많은 영향을 끼쳤고 각 시대의 사회상이나 민중의 생활상을 파
미륵신앙의 중심이라고 불리워지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고 경기전과 객사일대를 중심으로 전주의 전통 읍치경관을 답사하며 내가 사는 전주의 곳곳에 숨겨져 있는 장소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으며,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왜 일제 침략기에 일본인들이 경기전에 소학교를 세우고 오목대와
미륵은 보살과 부처라는 두 가지 성격을 띠며 불상과 보살상으로 표현
미륵전, 용화전, 대자보전에 봉안
미륵상생경, 미륵하생경, 미륵대성불경이 전해진다.
우리나라 미륵신앙 조성 시기
불교의 수용 이래 삼국시대부터 미륵에 대한 신앙과 조상활동이 대단히 활발하였음은 기록을 통해 알 수
미륵도장인 금산사 절을 가게 되었다. 불교사찰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절이다.
이장에서는 교재에 나온 문화자원 중 한옥, 궁궐, 전통정원, 불교, 국악, 가면극 중 하나를 체험한 후, 체험한 문화자원의 역사적 배경을 교재 및 기존 서적에 기초해서 고찰하세요.
1. 한옥, 궁궐, 전통정
Ⅱ. 미륵불도
미륵불의 도상적 특징은 의자에 앉아 두 다리를 나란히 늘어뜨린 모습이다. 미륵의 협시는 경전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청광보살(淸光菩薩)과 신광보살(神光菩薩)이라고 하며 대묘상보살(大妙相菩薩)과 법림보살(法臨菩薩)이라고도 한다. 밀교 경전인『백보구초(百寶口抄)』에는 법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