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신화』
『매월당집』
1) 금오신화
조선 세조 때 김시습이 금오산에서 창작
최초의 한문소설
5편만 현재 전하고 있는 전기(轉奇)적 한문소설집
-만복사저포기,이생규장전,취유부벽정기,남염부주지,용궁부연록
2) 정치적 배경
어린 단종의 죽음과 세조의 즉위
사육신과 생육신 등의 반발
과거 실패, 그리고 패도의 등장 등으로 말미암아 깊은 좌절을 겪고 있다. 이것은 금오신화의 각 작품에 등장하는 남성들의 성격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바라고 하겠다. 매월당은 삼각산 중흥사에서 수학 독서하다가, 21세 되던 해에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권을 잡았다는 소문을 듣고는 즉시 머리
매월당 김시습은 신라시조 김알지의 후손이다. 선대에는 왕족들과 대문장가등의 화려한 가문이었으나 그는 한미한 하급 무관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외조부에게서 千字文을 배우고 2세에는 한문에 통하였으며, 3세에는 作詩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正俗」.「字說」.「小學」등을 배웠다
), 범중엄(范仲淹), 포증(包拯)도 모두 죽은 뒤에 염라왕이 되었다고 믿어왔다. 이렇게 속인이 염라왕이 된다고 믿는 전승은 우리나라에도 있었을 법하다. 김시습은 그러한 민간전승을 이용하여, 현실계의 부조리를 역설적으로 부각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또,『용궁부연록』에 등장하는 조강신(
본문
김시습 (金時習) 은 강릉의 구족 (舊族) 으로서 세종 17년 (1435) 서울 반궁 (성균관) 북쪽에서 충순의 일성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생후 8개월만에 글자를 보고 그 뜻을 알았다고 하며, 또 남의 말뜻을 알아들었다고 하여, 집현전 학자 최치원이 기특히 여기고 그 이름을 '시습' 이라 지어 주었다고
4. 김만중의 생애와 사상관
김만중의 호는 서포이며 인조 15년에 출생하여 숙종 18년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는 유복자로 태어나 부친을 한 번도 보지 못했음을 한으로 여겼고 어머니 윤 씨에 대한 효성이 각별했다. 어머니의 엄격한 훈육 아래서 영특한 자질을 타고난 서포는 16세에 진사시험
용궁, 저승) 체험담을 그려내는데 더욱 효과적으로 이용된다.
한편, 「남염부주지」는 다른 네 작품과 달리 특이한 서술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주인공 박생과 염왕이 문답식 대화를 통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는 것인데, 이러한 방법은 김시습이 작품을 통해 현실세계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고전 소설이란 옛날 설화를 바탕으로 중국 소설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산문 문학의 한 종류로, 갑오경장 이전까지 쓰여 진 옛 소설을 말한다. 우리나라 소설은 전기적 요소를 간직한 한문소설에서부터 출발한다. TV 나 영화에서 ‘춘향전’, ‘홍길동전’ 등과 같이 시대극, 역사극의 소재로 고전소설을
이율곡은 김시습이 "성질이 굳세고 곧아 세속을 분개하여 심기가 답답하고 편안하지 못하매 스스로 세상을 따라 오르고 내릴 수 없음을 헤아린 나머지 드디어 그 몸을 내던져 세상밖에서 놀았다."고 하였다. 김시습 자신은은 "선비는 자신과 세상이 모순이 있으면 물러가 살면서 自樂하는 것이 대체로
신화』의 「富貴發跡司志」와 같은 계열이 아니며 「등목취유취경원기」의 모방작이 아님을 주장했다.
그 후 林熒澤·趙東一·蘇在英·金光淳·李相澤· 重煥등에 의해 기왕의 모방설에 대한 구체적인 반론이 제기, 이에 따라 『금오신화』는 『전등신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김시습의 독자적인 창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