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화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크게 선비나 사대부계층이 여가와 취미로 그린 문인화와 직업화가들이 그린 풍속화로 양분된다.
조각은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크나큰 발전을 이루었으며 실생활에서 주로 이용되었던 장신구와 도자기 등도 높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특히 고려시대의 청자는 우아하
탱화를 모시는데 대개 흰수염, 대머리, 긴 눈썹이 휘날리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손에는 하얀 깃털부채나 파초선·불로초 등을 들고 있고 주로 봉래산·영주산·방장산 등의 삼신산을 배경으로 한다.
한라산이나 속리산·계룡산·지리산 등지의 사찰에는 드물게 여자 산신을 모시는 경우도 있다. 여자
구층석탑
구층석탑은 고산스님이 인도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올 때 스리랑카에서 직접 모셔온 석가여래 진신사리 삼과(三顆)와 산내 암자인 국사암 후불탱화에서 출현한 부처님의 진신사리 이과(二顆)와 전단나무 부처님 일위(一位)를 모셨다. 때마침 발심서원 어떤 일을 하기로 마음먹고 신불(神
탱화를 비롯하여, 지장보살․시왕․업경대 등 정말 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
불교에서 보이는 세계상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르다.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나 달라 허무맹랑한 세계 혹은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공상의 세계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황당한 세계라고 하기에
탱화를 그렸다. 1791년에 다시 어용화사로 선발되어 정조어진 원유관본(遠遊冠本) 제작에 참여한 공으로, 그해 겨울 충청도 연풍 현감에 임명되어 1795년 정월까지 봉직했다. 현감으로 일한 경험은 김홍도가 민중들의 삶을 자신만의 개성으로 그려내는 중요한 기회가 되었다. 현감 퇴임 후의 만년에는 지
탱화가 모셔지기도 할 정도로 무당들은 불교나 도교의 표현을 많이 빌려다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무당들은 불교가 태어나기 수천 년 전에 동방을 지배했던 신교의 전통을 잊어버리지 않고 병행시키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가장 뚜렷하게 알려주는 산 자료가 三神幀畵라고 느껴진
탱화, 영정 등 손으로 그릴 수 있는 모든 그림을 일컫는다. 단청의 빛깔은 빨강 파랑 노랑 하양 검정의 이른바 오방색이다. 파랑은 목, 하양은 금, 노랑은 토, 빨강은 화, 그리고 검정은 수를 상징한다. 목에서 출발해 수에 이르는 전통의 오행사상과 맥이 닿는다. 서로 도와주고 길러주는 상생의 고리로
보기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예를 들어 용주사의 대웅보전 후불탱화를 보았을 때 음영화법을 볼 수 있는 힘이 없다면 그 시기에 이르러 서양화법에 대한 거부감이 누그러지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분위기로 돌아섰다는 시대상을 이해 할 수 없음은 당연한 것이다.
않았었다. 왜냐하면 어린 나의 눈에는 법당안에 그려놓은 탱화들이 그다지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던 것 같다. 다만 무섭게만 보일뿐이었다. 게다가 법당안에 들어가면 마음대로 편하게 앉지도 못할뿐더러 조금이라도 떠들게되면 주위 사람들의 눈총을 받게 되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