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가 그러하듯이.’
문장여화(文章如畵), 글은 그림과 같다고 했던가. 글이라는 것은 참 신기한 것 같다. 몇 문장 안 되는 짧은 시 하나를 읽었을 뿐인데, 이렇게 생생한 장면이 그림같이 머릿속에 펼쳐지니 말이다.
백석 시인의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시는 평소에도 좋아하던 시였다. 글자를 읽는
릴케ㆍ파울리 등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대독(對獨) 강경론을 펴다가 공직에서 해임된 뒤 미국에 망명, 시작을 계속하였고, 귀국(1957)한 뒤에는 1960년경, 노벨상을 수상했다. 현대시의 거봉을 이루는 웅대한 교향곡적 시풍을 보이고 있다.
상징주의적인 시집 〈천거〉(1904-1908) 이후 〈귀양〉(1946), 〈바
릴케가 그러 하듯이
-흰 바람벽이 있어
계집아이는 운다 느끼며 운다
텅 비인 차 안 한구석에서 어느 한 사람도 눈을 씻는다
계집아이는 몇해고 내지인 주재소장 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이렇게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 얼어서
찬물에 걸레를 쳤을 것이다
-팔원
눈은 푹푹 나
릴케가 만난
슬라브여인의 마음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또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고 있는 어리디 어린 순결이다
삼월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두 빛 바람이다.
비유에 대해 알아보자!
비유란?
비교에 의해 관
릴케의 영향을 많이 받은 상징시 경향, 이성을 바탕으로 한 서정시
▶무의미시
사물에서 관념을 배제하고 오직 이미지만을 제시하려고 노력함.
⇒이런 노력을 대표하는 시집인 <처용>, <처용단장> 등에서 신화적 인물인 처용의 이미지를 빌려 존재의 고독감을 상징적으로 표현.
민중시
1. 김지하
▶김지
릴케의 일역판 시집 발견.
-1940
4월 일본대학 예술학원 창작과에 입학.
-1942
일본 천황과 총독정치를 비판하여 불경죄로 헌병대,경찰서에서 7개월 동안 갖힘.
그후 서울로 송치,학교에서 퇴학처분.
-1948
8월에 첫 시집 『구름과 장미』(행문사) 출간.
-1949
마산중학교로 전근, 1951년까지 근무.
-1950
3
릴케의 시를 주로 읽으면서 초현실주의에 눈을 떴다. 그리고 정지용, 한용운, 서정주, 이상 등에 심취하기도 했다.
김구용의 문단 등단은 1949년 김동리의 주선으로『신천지』에 시「산중야」를 발표하면서부터 이며 그해 성균관대학에 입학했다. 1950년 전쟁의 와중에『사랑의 세계』지와『현대문학』
릴케의 시와 <말테의 수기>, <로댕>,<문학을 지망하는 청년에게>등과 F. 니체의<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창전백삼의 <사랑과 인식의 출발>, 스티븐 스펜더, 딜런 토머스, T.S. 엘리엇 등을 읽으며 문학 수업을 쌓아갔다.
1966년 한양대학교 문리대 국문학과 졸업. 방황과 좌절의 혹독한 문학 수업
릴케 <말테의 수기>_ 어느 도시민의 영혼
슈테판 츠바이크 <에라스무스 전기>_ 편들지 말라, 혼자여라!
포에지poesie의 싹이 트다_ 이바구 떼바구 강떼바구
세상 만물이 스승이었다.
내게 읽기의 첫 스승은 할머니셨다.
이바구는 이야기를 일컫는 경상도 말이지만, 뜻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소리만의 시
도시공간을 통해 바라본 고향의 의미
-도시공간과 고향-
1. 문제제기
릴케나 하이데거는 인간을 실향인으로 보았으며, 파울게르하르트나 노발리스가 인간이 귀향자라고 묘사한 것은 고향은 인간 실존의 근저로서 인간 존재의 근원적 물음을 생각하게 한다. 오늘날처럼 구조화된 사회화속에서의 고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