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序에 처음 나타난다.
이두의 기원에 대한 정확한 의견을 정립되어지지 않았으나 대체로 7세기에 이두가 체제를 갖추었다고 본다. 설총이 이두를 창안한 사람이라는 설이 있으나 그가 살았던 시대보다 백여년 앞서 진평왕 13년(591)에 건립된 경주 남산신성비(南山新城碑)에서 이두식 표기의
훈민정음(訓民正音) :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1) 문자의 명칭으로서의 훈민정음
① 언문(言文) : 훈민정음을 낮추어 부른 이름으로, 한문을 높여 부르던 진서(眞書)의 상대적인 명칭이다.
② 반절(半切) : 중종 때 최세진이 지은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 비롯된 명칭으로, 한자의 음을 기록하는 발
이 논문은 고대국어의 한 방언인 고구려말의 차자 표기 자료를 분석한 논문이다. 이는 곧 고구려시대에 고구려지역에서 쓰인 말에 대한 연구라는 점에서 하나의 공시언어학이다. 즉, 고대국어를 단일어에 뿌리를 둔 하나의 큰 공시태로 설정하고, 이 가운데 고구려 지역에서 쓰인 말에 관련된 자료를
표기에서 일찍부터 차자의 방법에 많이 의존하게 되었다. 그러나 삼국시대에는 한자음이 통일되지 않아서 차자표기의 상호 교환에 많은 혼란이 있었으며, 각국이 독자적으로 개발해서 자국의 고유명사 등을 표기하였다. 신라에서는 향찰 구결 등의 표기법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한반도에서 한자의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