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서
- ‘대학’과 ‘중용’은 원래 각각 ‘예기’속의 한 편이었으나, 유교 교설의 뛰어난 개론으로서 주목되어 주자가 그것을 빼내어 ‘논어’, ‘맹자’와 함께 사서라 부르고, 사서야말로 공문의 사제전수에 도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주자가 여기에 베푼 주석 가운데 ‘대
공문 송도독서
곧장 인신공문을 처리해 감독관청에 보냈다.
不意署中已空無一人, 張鳴岐不知去向, 轉送與龍濟光。
불의서중이공무일인 장명기부지거향 전송여용제광
뜻하지 않게 관청중에 이미 비어 한 사람도 없고 장명기는 간곳을 몰라 용제광을 전송했다.
濟光因張督不到, 亦不願就任, 於是改
도통도 부활시키고자 했다. 반면 당시의 불교와 도교는 생산 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착취를 확대한 것 등의 이유로 반대한다. 대표적인 문장으로 <원도>,<사설>,<간영불골표>등이 있다.
[유종원(柳宗元, 773~819)]
생애: 자는 자후(子厚)으로 그는 산서성 하동군에서 태어났다. 유종원은 가문 있는 관리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