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전서」가있음.
정조는 타고난 학자였다. 그는 지나치게 문학에 정력을 쏟는다고 간언하는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작문(作文)이란 잠깐 정력을 쓰는 데 불과할 뿐이지만 하루 정사(政事)를 보자면 좌수우접(左酬右接) 하는 등 (그 노고를) 어찌 작문에 비할까보냐. 나 역시 청
홍재전서>>는 경학과 역사 문학에 대한 당대의 쟁점을 요령있게 파악하고 잇는 최고의 학자였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당대에 유행한 신문체의 문제를 인식한 최초의 인문이기도 하다.
2. 정조 16년 글쓰기에 대한 권력의 검열 - 문체반정(문체를 순정한 상태로 복귀시킨다)
이 사건은 천주교의 전파가 촉
홍재(弘齋), 묘호는 정조(正祖), 시호와 존호는 경천명도홍덕현모문성무렬성인장효대왕(敬天明道洪德顯謨文成武烈聖仁莊孝大王)이며 대한제국 때 정조선황제(正祖宣皇帝)로 추존되었다.영조의 둘째 아들인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8살에 왕세손에 임명되었다. 1762년
조선 제22대 왕
(1766~1800까지 통치)
- 이름은 산. 자는 형운. 호는 홍재.
영조의 손자. 아버지는 장헌세자
어머니는 영의정 홍봉한의 딸
혜경궁 홍씨.
서얼의 등용
- 서얼 허통 법을 통해 서자와 얼자 등이 과거시험을 볼 수
있게 함
- 지방의 향임직과 규장각 서원직과 청요직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