仙境의 의미까지를 내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조선후기에 그려진 진경산수의 대종이 평범한 주변, 세속의 풍경을 담은 것이 아니고, 금강산을 비롯한 명승고적에 초점을 맞춘 것도 이 때문이며, 깨끗한 땅으로서의 仙境의 의미까지 내포한다고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진경산수화는 일찍부터 동
仙境을 그린다. 곧 老莊思想과 神仙思想이 道敎의 중심사상이다. 金甲起, 「松江 鄭澈 硏究」, 二友出版社, 1985, p.274.
도교의 노장사상에 대해 朴晟義는 “노자의 사상은 허무로 한 무위자연설로서 그 자신도 주실쇠미와 난세 암흑시대를 처하여 서방관에 들어가 세상을 도피한 현실도피의 심리를 가지
유선이다. 곧 현상계에 있으면서 신선세계를 동경하여 그것을 관념적으로 지향하고 있다. 西湖의 자연 경관물은 이미 현상으로 나타나는 자연물이 아니라 許橿에 있어서는 仙境이며, 자신은 선계에 오른 신선이 된 듯하다. 자아 흥취가 이미 도도한 상태여서 굳이 선계를 꿈꿀 필요가 없다.
떼지어 이곳에 날아들어 서식하다가 남쪽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이때 5천여평 되는 소나무 숲에 둥지를 틀고 내려앉은 모습이 마치 선경(仙境)을 방불케 하여 각양각지에서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까지도 이 장관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찾아오기도 한다. 임실군의 마스코트도 백로를 본따 만들었다.
仙境)과 환상을 추구하는 시인이었다. 그는 끝까지 이상을 추구하려 했다. 현실 사회는 그에게 충분한 만족을 주지 못했다. 현실의 정치가 그의 기대와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어 갈 때 그는 이상적 사회를 초현실적 세계에서 구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그것이 바로 이백의 이상, 구속이 없는 신선 세계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