繪畵)의 양식으로 확립되어 그 화류(畵流)는 중국화 가운데서 커다란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데, 그 모체가 된 것이 원나라의 4대가이다. 그들은 오진(吳鎭)·황공망(黃公望)·예찬(倪瓚)·왕몽(王蒙)의 4명으로, 이들은 거의 같은 시대에 화단에 등단하였고, 출신지는 장쑤[江蘇]·저장[浙江]의 두 성(省)이다
. 북송(北宋)의 이공린(李公麟), 남송(南宋)의 유송년(劉松年) 등의 화풍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여겨지지만 남아 있는 작품이 없어 확인할 길이 없다.
일본에 그의 이름이 적힌 「백의관음상(白衣觀音像)」이 한 점 전해지고 있으나 그의 진작(眞作)으로 단정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안귀생(安貴生)
제1기의 회화는 북송(北宋)의 곽희파(郭熙派) 화풍을 받아들여 그것을 우리 나름의 새로운 양식으로 개성있게 창조한 화가 안견(安堅)에 의한 안견파 화풍이 주류를 이루면서, 명대의 원체(體院 )화풍과 절파(浙派)화풍의 유입, 이상좌에 의한 남송(南宋)의 마하파 (馬夏)류의 화풍이 전개되었다.
1. 안견
Ⅰ. 머리말
북송(北宋)시기부터 금(金)의 침략으로 항주로 도읍을 옮긴 남송(南宋)시대에 이르기까지 송 왕조는 300년에 걸친 시기동안 중국역사에서 그 어느 때 보다도 번성한 문화적 업적을 남겼다. 오대십국(五代十國)기의 혼란을 수습하고 통일을 이루었기 때문에 건국 초기부터 황제권 강화를
중국 고대 그림
춘추전국 시대(春秋戰國時代)
용봉사녀도
인물어룡도
한
채회백화
-비의(飛衣)
위,진(魏,晉)
둔전도(屯田圖)
영루도(營壘圖)
동진(東晉)
죽림칠현 영계기(竹林七賢 榮啓期)
전화(塼畵; 벽돌이나 기와에 그린 그림)
부분
전체
고개지(顧愷之:344경 ~ 406경)
산수화의 발생
낙신부도(洛神賦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