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喪) 일년을 더하였으며, 심상을 마친 18세 가을에 관례(冠禮)를 행하였다. 그리고는 19세 되던 3월 금강산에 들어갔고 1년을 머문 뒤 곧 금강산을 내려와서 강릉에 머물며, 「자경문(自警文)」을 지어 성인(聖人)을 준칙으로 삼아 공부할 것을 스스로 기약하였고, 21세 봄에 서울로 돌아와 한성시(漢城試)
心喪)을 입는다고 했다. 이 상례는 오례의 하나로서, 곧 길례(吉禮), 흉례(凶禮), 빈례(賓禮), 군례(軍禮), 가례(嘉禮) 중에 속하는 데 이 중의 어는 예보다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안되는 의식이다. 그러기에 옛날 애공(哀公)같은 임금은 공자에게 물어 본 다음에 상장(喪葬)의 일을 결정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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