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혁정치기라고까지 일컬어지는 경덕왕(景德王 : 742~765년) 시기에 신라는 군사 제도를 비롯한 각종 제도의 개혁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그 뒤를 이은 혜공왕(惠恭王 : 765~780년) 시기부터 왕권을 둘러싼 귀족 세력 사이의 쟁탈전이 격화되면서, 신라는 흔히 중대(中代 : 654~780년)라고 불리는 시기를
王) 때에 혁거세묘(赫居世廟)를 세우고 혜공왕(惠恭王) 때에 5묘(廟)의 제도를 정했으며 산천에도 제사를 지냈으며, 백제에는 동명묘(東明廟)가 있었다.
고려시대에 중국의 제도를 본떠 원구(천신을 제사지내는 원형의 단)·방택(方澤 : 지기를 제사지내는 사각형의 단)·사직(社稷)·종묘(宗廟)·능침(陵
통일신라 말의 폐해
: 신라는 혜공왕(惠恭王, 758~780) 이후 쇠락의 길을 걷게 됨
“ 신라는 말기가 되었으므로, 정치는 문란하고 백성들은 흩어져서 서울 밖의 주 · 현은 배반한 곳이 절반이나 되었고,
먼 곳과 가까운 곳에서 뭇 도적들이 벌떼처럼 일어났고
개미떼처럼 모여 있었다. ” -《삼
침체
30대 문무왕 때 통일을 이룩한 후 35대 경덕왕에 이르기 까지는 국가적으로도 전성기였지만 불교문화도 더할 수 없이 찬란했던 황금시대였었다. 특히 경뎍왕대를 불교문화의 최고 정정미아로 볼 수 있는데 36대 혜공왕(惠恭王)대를 지나면서 불교문화도 차츰 침쳬기로 접어들기 시작하였다.
王建(태조 왕건)이 전장에서 말을 달리기 40년 만에 이룬 새로운 통일의 역사 전개과정을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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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라 말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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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 왕 계보
36대 혜공왕(惠恭)(765~780) 37대 선덕왕(宣德)(780~785) 38대 원성왕(元聖)(785~798) 39대 소성왕(昭聖)(798~800) 40대 애장왕(哀莊)(800~809) 41대 헌덕왕(憲德)(809~826) 42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