椽那部) 조의(皁依:관명) 명림답부(明臨荅夫)가 백성이 견디지 못함을 이유로 왕을 시해(弑害)하였다. - 《三國史記》권 제 15 고구려 본기 제 3.
C. 봉상왕(烽上王:제14대) 9년 8월 이후에 國相 창조리(倉助利)가 왕에게 간하였는데 허물을 고치지 않음을 알고 또 (자기에게)해가 미칠까 두려워
Ⅰ. 개요
중앙집권적 관료체제에서는 모든 권력이 형식적으로는 국왕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국왕은 모든 사람의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지식인 관료들의 분열을 막고 국가의 강한 응집력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칙적으로는 국왕에 대한 반역
머리말
70년대 초 이후 한국고대사 분야에서 가장 큰 쟁점의 하나로 부각되어 관심을 끌어 왔던 것은 초기국가의 형성과정을 둘러싼 문제였다. 6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사에서 초기국가는 씨족(氏族)→부족(部族)→부족국가(部族國家)→부족연맹(部族聯盟) 이란 일련의 계기적인 발전 과정을
고구려의 대외관계 - 부여
Ⅰ머리말
부여와 고구려는 비슷한 문화적 전통과 의식을 지녔으며, 국가성장 과정에서 주변 어느 세력보다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경쟁 속에 국가발달을 이루어 갔다. 그러한 과정에서 부여는 고구려와 우호적인 관계를 가졌던 때도 있었고, 때로는 큰 무력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