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 삼국의 반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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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고대사] 삼국의 반란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 론

2. 본 론
Ⅰ. 고 구 려
Ⅱ. 백제중고기의 반란
Ⅲ. 신라 중고기의 반란

3. 결 론
본문내용
1. 서 론
우리 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나라를 이끌어 가는 집권층이 있는 반면에 그 집권층과 대립하며 집권층의 권력을 차지하려는 反집권층을 항상 찾아 볼 수 있다. 그것은 비단 우리 나라의 역사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찾아 볼 수 있는 사실 이다. 여기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시대의 반란에 대해서 간략하게 알아보도록 하겠다.

2. 본 론

Ⅰ. 고 구 려
《三國史記》의 기사를 중심으로 고구려의 반란에 대해서 보려고 한다. 아래의 기사는 《三國史記》의 기사들 중에서 왕이 시해되거나 반란을 일으킨 기사들이다.

A. 모본왕(慕本王:제5대) 6년 11월에 두로(杜魯)가 왕을 시(弑)하였다. 왕이 포학하여 백성의 원수였으므로 칼을 뽑아 해하였다고 한다. - 《三國史記》권 제 14 고구려 본기 제 2.
B. 차대왕(次大王:제7대) 20년 10월에 연나부(椽那部) 조의(皁依:관명) 명림답부(明臨荅夫)가 백성이 견디지 못함을 이유로 왕을 시해(弑害)하였다. - 《三國史記》권 제 15 고구려 본기 제 3.
C. 봉상왕(烽上王:제14대) 9년 8월 이후에 國相 창조리(倉助利)가 왕에게 간하였는데 허물을 고치지 않음을 알고 또 (자기에게)해가 미칠까 두려워 물러가 여러 신하와 폐립(廢立)을 동모(同謀)하여 을불(乙弗) 미천왕(美川王) 고구려 제15대왕. “서천왕 고추가 돌고의 아들 봉상왕이 아우 돌고가 다른 마음을 품은 줄 알고 의심하여 그를 죽이니 돌고의 아들 을불은 해를 입을까 두려워해 도망해 살았다.” - 《三國史記》권 제 17 고구려 본기 제 5.
을 맞아 왕을 삼았다. - 《三國史記》권 제 17 고구려 본기 제 5.
D. 양원왕(陽原王:제24대) 13년 10월 환도성(丸都成)의 간주리(干朱理)란 자가 모반(謀叛)하다가 복주(伏誅) 복주(伏誅) : 형벌을 받아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되었다. - 《三國史記》권 제 19 고구려 본기 제 7.
E. 영류왕(榮留王:제27대) 25년 10월에 개소문(蓋蘇文)이 왕을 시(弑)하였다.
- 《三國史記》권 제 20 고구려 본기 제 8.

고구려때 일어난 반란이 확실하게 생각되는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고국원왕 이후에 부자 상속제가 유지되는데, 예를 들어 안장왕(22대)부터 안원왕(23대), 양원왕(24대)까지 15년 안팎의 재위 기간을 가지게되는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