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대외관계 - 부여
Ⅰ머리말
부여와 고구려는 비슷한 문화적 전통과 의식을 지녔으며, 국가성장 과정에서 주변 어느 세력보다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경쟁 속에 국가발달을 이루어 갔다. 그러한 과정에서 부여는 고구려와 우호적인 관계를 가졌던 때도 있었고, 때로는 큰 무력충
하되, 장기적, 포괄적, 국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고구려 연구재단을 중심으로 한 남북한 및 국제학술 네트워크의 구축을 지속적이고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한국의 고대사 관련 연구만이 아니라 한․중 관계사 전반에 관한 연구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정치문제를 학술
여기서 부여, 고구려도 기원한다는 것이다. 이는 고구려사 왜곡을 넘어 현재의 우리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고 할 수 있고 유사시 북한에 대한 개입의 역사적 명분을 쌓는 작업의 일환일 수 있다는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결국 한반도를 중국의 영향력 하에 두려는 대국화 전략의 표출인 것이다.
대외의식을 기반으로 하여 인국에 대한 정토를 합리화하는 동시에 주 정복대상에 대하여는 그러한 복속관계를 구체화하고자 하였던 점에 있다고 하겠다.
주목되는 것은 고구려에 있어 주 정복대상은 백제와 신라 및 동부여였으며, 왜와 비려 등은 부수적인 대상으로 단지 토멸의 대상일 뿐이었다는
고구려 본기 제9, 보장왕 4년)
고구려대외정책의 변화
: 연개소문의 집권 후 강경한 대당 정책 추진, 천리장성의 축조 (부여성~비사성) (631~647)
*원인 : 고구려의 강경책, 당 태종의 지배욕, 연개소문의 집권과 천리장성의 축조
*구실 : “연개소문의 집권을 문책한다.”
*경과 : 당 태종의 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