欽明紀 12년 조에는
C. 백제 聖明王이 몸소 군사 및 두 나라의 병사를 거느리고(두 나라는 신라, 임나) 고려를 정벌하여 漢城의 땅을 차지하였다. 또 진군하여 평양을 토벌하여 무릇 옛 땅 6군을 회복하였다.
신라는 백제의 제안을 거부하고 고구려와 군사행동을 같이 하면서
한강이남지역을 차지
이로써
欽明天皇]의 셋째 황녀이다.
비다쓰 천황이 암살당하고 요메이천황이 즉위한지 2년 만인 587년에 병으로 사망하자 정치권력의 공백이 생겼다. 592년 12월 누카타베 황녀가 39세에 스이코 천황으로 즉위하였다. 이로써 스이코 천황은 일본 역사상 최초의 여제(女帝)가 되었다.
스이코 천황은 황족세력인 우
欽明天皇)에게 두 딸을 시집보내어 외척관계를 맺었다. 소가노 이나메의 딸 기타시히메(堅鹽媛)와 오아네노키미(小姉君)는 긴메이 천황의 비가 되어 스이코 천황, 요메이 천황(用明天皇), 스슌 천황 세 천황과 여러 왕자, 왕녀를 낳았다. 그리고 모친을 달리 하는 이들 왕자와 왕녀들이 혼인하여 다시 소
欽明紀)조차 ‘일본’과 ‘왜’가 혼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부(府)’: 중국의 한대(漢代)에서 비롯되어 장군(列將-雜號將軍 이상)이 천자로 부터 위임받은 군사권과 행정권을 행사하기 위해 일정한 지역에 설치하였던 막부(幕府)를 의미하며, 기관이나 관청의 용례로 쓰이는 것이 보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