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44년 채헌이 지은 경상도 청도군 동 호거산 운문사사적에 의하면 운문사는 진문제가 원년에 한 도승이 대작갑사로 창건한 다음 그 뒤에 원광법사가 수 문제 개황 11년(591)에 이곳에 머물면서 제 1중창을 하였고, 그 뒤 후삼국시대에 보양선사가 이곳에 주석하며 고려 태조의 귀의를 받아 토지 5백 결
神將)은 아 니지만 공적(公敵)이 되어야 할 이유도 없는 한 사람의 용감한 장수이자 왜적에 맞서 싸워 목 숨을 바친 공신일 뿐이다.
6. 이순신은 무(武)를 숭상하는 인물이 집권하면 항상 추앙되는데 근래에는 박정희가, 조선시대에 는 효종이 그랬다. 효종은 북벌에 대한 문신들의 냉소를 잠재우기 위해
神將像)들의 얼굴이 매우 사납다는 점 등이다. 야쿠시 사의 삼존불이나 성관음상이 당 양식을 대표하며 고후쿠 사[興福寺]의 팔부중상(八部衆像)은 일본이 새롭게 성취한 우아한 당풍을 잘 보여준다. 회화의 예로는 하쿠호 시대의 것으로서 호류 사 벽화와 다카마쓰즈카[高松塚] 벽화를 들 수 있는데 전
神將)의 무서운 얼굴을 이정표에 새기고 그의 이름을 장생이라고 함으로써 길을 통해 들어오는 좋지 못한 귀신들을 막고자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장생들은 그 기원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장생이 법수에서 온 것이라면 법수에서 장생으로의 이름 변화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