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道亦在妙悟(선도는 오직 묘오에 있으며, 시도 또한 묘오에 있다)’라 하여 선(禪)과 시(詩) 사이의 유사점을 강조하였다. 여본중(呂本中)은 글을 지음에 있어 활법(活法)에 오입(悟入)해야 한다고 제기한다. 이는 시가(詩歌) 예술의 표현 방식과 창작 기법에 관한 일반적 법칙을 완전히 체득한 바탕 위
전기(轉機)를 마련하였다. 저서로는 『후산시화(後山詩話)』가 있다.
를 말했으며, 모두가 스스로 말하였다.
“그 자리를 뺏을 수 있다.”
이는 망령될 뿐이다. 이것은 그 말뜻을 주워서 그대로 답습하고 표절하여 스스로 자랑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 이들과 어찌 시도(詩道)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Ⅰ. 서 론
김시습은 조선 초기의 문인, 학자이자 불교 승려이다.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한성부에서 출생하였고 지난날 한때 경상도 김해를 거쳐 강원도 강릉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의 본관은 강릉, 자는 열경, 호는 매월당·동봉·벽산청은·췌세옹, 불교 법명은 설잠이다.
충순위(忠順
却說太監喜寧, 自叛降?先後, 嘗導他入邊寇掠, 且阻上皇南還。
각설태감희녕 자반항먀선후 상도타입변구략 차조상황남환
각설하고 태감 희녕은 에센에 반란해 항복한 후로 일찍이 그를 인도해 변경에 들어와 노략질 하게 하고 상황의 남쪽 소환을 저지시켰다.
上皇恨寧切骨, 輒與侍臣袁彬密議, 謀殺
무리가 되며 돌의 형체를 바꾸는 파죽지세가 될 것이다.
當使鍾山渡江, ?蓋入洛, 荊棘生於建業之宮, ?鹿遊於姑蘇之館。
당사종산도강 청개입락 형극생어건업지궁 미록유어고소지관
?蓋 : 푸른 일산
종산에서 장강을 건너 황제의 푸른 일산이 낙수에 들어가면 폐허가 되어 건업궁궐에 가시나무가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