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암(沖庵) 김정(金淨)은 그의 학문, 인생에 있어 도학(道學)과 문학(文學)을 다같이 중시하였다. 그가 <十一筬>에서 “내가 어려서 수신(修身)을 중시하여 항상 도예(道藝)의 심연에 마음을 노닐고 문학의 수풀에 생각을 펴서 장차 원기(元氣)를 크게 머금고 은미한 이치를 깊이 헤아리려 하였다.”라고
조광조 趙光祖
1482(성종 13) ~ 1519(중종 1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 한성출생.
개국공신 온(溫)의 5대손으로, 감찰 원강(元綱)의 아들이다. 17세 때 어천찰방(魚川察訪)으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가, 오사화로 화를 입고 회천에 유배 중이던 김굉필(金
1. 서양문화의 수용과 근대적 전환
(1) 문제의 의미
한국근대사에 있어서 서양문화의 전래와 이에 대한 유교적 전통사회의 반응은 사상사적 전개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계가를 이루고 있다. 곧 한국의 근대사는 전통사회가 서양문화와 서로 만남을 통하여 중국 중심의 세계를 넘어서 지구 위에 전체 세
Ⅰ. 개요
원불교사상의 전반에 깔려있는 특징 중의 하나는 타종교와의 회통사상이다. 이는 소태산의 회통정신 속에서 발한 것인데 그는 말하기를 「유불선 삼교가 각각 그 분야만의 교화를 주로하여 왔지만은 앞으로는 그 일부만 가지고는 널리 세상을 구원하지 못할 것이므로 우리는 이 모든 교
道學) 혹은 도교(道敎)라고도 한다. 도가라는 명칭은 학파를 가리키는 말로서, 사마담이 최초로 쓰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으며, 도학이라는 명칭은 도에 관한 학문 혹은 도가철학의 뜻으로 쓰여 왔는데(《수서》경적지), 송대의 유학 곧 신유학을 도학(道學; 도통을 계승한 학문이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