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와 더불어 한민족의 고대 활동무대였던 간도는 조선조 말기에는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한 영세민들의 ‘신천지’였다. 나아가 대한제국 시대 일제 침략과 그를 이은 식민지 지배시기에는 국권 회복과 조국광복을 위한 민족해방투쟁의 중심무대가 된 곳이다. 특히 독립운동사에서 큰 줄기를
‘간도와 연해주’선정의 이유:
간도와 연해주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고려인과 조선족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방법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선택하였습니다.
.
.
2-1. 1910년대 간도와 연해주의 독립운동
서간도
세계 1차대전의 종전 전후로 국내로부터 새로운 이주자가
부민단을 대대적으로 개
청년당(1918) : 김규식을 따라 강화 회의에 대표로 파견
연해주
- 블라디보스크에 신한촌 형성
- 권업회 조직(자치 기구), 대한 광복군 정부 수립(1914)
미주
- 대한인 국민회(1910) : 미주 지역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 단체로 성장
- 대조선 국민 군단 : 박용만이 하와이에서 결성 -> 군사 훈련 실시
운동이 독립을 선언한 운동이었던 만큼 그 결과로 정부 수립이 추진되었음은 물론이다. 정부 수립운동은 세 지역에서 추진되었으며 맨 먼저 추진된 곳은 노령의 블라디보스톡이었다. 그 곳 교포사회를 바탕으로 이미 성립되어 있었던 한족중앙총회(韓族中央總會)가 대한국민의회(大韓國民議會)로 개
Ⅰ. 1910년대의 정부수립운동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전쟁에 휩싸인 러시아와 중국은 우호적이었던 한인정책을 철회하였다. 그 결과 ‘독립전쟁론’에 입각하여 항일 민족운동을 이끌던 노령 연해주의 권업회와 대한광복군정부, 북간도의 간민회 등이 이 시기를 전후로 해산을 당했다.
전쟁이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