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으로 인한 쌀 수탈과 소작료 인상, 1930년대 일본 제국주의 전쟁을 위해 조선을 자국의 병참 기지로 만들기 위한 민족 말살 정책이 그것이다. 그 결과 조선 민족에 주어지는 것은 파멸과 몰락이었다.
현진건의 <고향>은 근대적 소유권 확립이라는 미명아래 실시되었던 1910년대 토지조사 사업으로 인
독립운동사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물론 한국민족은 이미 1905년 전후부터 일본 제국주의를 한반도에서 추방하기 위해 의병들이 선전을 포고하고 한일무장투쟁을 벌였다. 특히 3.1운동 직후부터의 큰 규모의 독립군의 전투활동과 임시정부의 광복군의 활동은 이미 일본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하고 전
운동가와 지식인들은 독립운동의 대열에서 떨어져 나와 개인의 안락을 추구하는 삶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어떤 부류는 민족개량주의 단체를 만들어 말로는 민족을 위하고 독립을 주장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자신의 명예와 지위 향상을 위한 발판으로 이용하고, 많은 수의 지식인은 자신의 가야할 길
의한 저서들도 발표되었다. 대표적으로 金承學, ꡔ韓國獨立史ꡕ, 독립문화사, 1965; 申載洪 외, ꡔ韓國獨立運動史ꡕ 3, 국사편찬위원회, 1967; 조동걸 외, ꡔ독립군전투사ꡕ,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등이 있다.
이런 연구 성과들은 1980년대 연구에 든든한 바탕을 마련해 주었다.
‘간도와 연해주’선정의 이유:
간도와 연해주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고려인과 조선족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방법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선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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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1910년대 간도와 연해주의 독립운동
서간도
세계 1차대전의 종전 전후로 국내로부터 새로운 이주자가
부민단을 대대적으로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