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개요
19세기 말 강유위 등의 무술 변법운동이 이미 실패로 끝난 뒤 1900년경 완성된 강의 이름난 저서, 『大同書』는 사실상 실제 개혁운동의 추진과는 분리된 저술로서, 당장 현실에의 접근 가능성이 더욱 멀어질수록 그 유토피아의 내용은 더욱 정밀해져 갔던 것이다. 그런데 이 유토피아 관념이
강유위(康有爲)는 광서제(光緖帝)를 포섭하여 위로부터의 정치변혁을 시도하였고, 강유위를 중심으로 추진된 변법운동은 제국주의적 침략 속에, 망국의 위기에 처해 있는 나라를 구하려는 구국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중국 근대 개혁 운동의 중요한 무술변법은 백일천하로 실패하였지만 종래의 전통
강유위 등의 상주문(上奏文)에 보이는 개혁의 내용은 정체변혁(政體變革) 외에 군비강화와 징병제, 산업·교통진흥 등의 <부국강병책>, 교육개혁과 인재등용, 국교로서의 공자교(孔子敎) 수립 등이며, 그것도 양무운동과 같이 각 지방에서 개별적·부분적으로 행해진 것이 아니라 전국규모에서 통일
강유위(康有爲)·담사동(譚嗣同)·양계초(梁啓超) 등은 정치개혁운동인 이른바 변법운동(變法運動)을 추진하였다. 무술정변(戊戌政變;1898)부터 신해혁명(1911)까지의 10여 년간에는 엄복(嚴復)·왕국유(王國維) 등에 의해 서양사상의 유입이 급속도로 진전되는데, 이 시기에는 많은 지식인들에 의해 혁명사
강유위를 이론적 지도자로 한 일종의 구국 운동 전개 하였다.
강유위는 강학을 하면서 양계초의 협조로 1891년에 신학위경고를 완성하였다. 그는 신학위경고에서 경서의 고문과 금문의 진위를 논하면서 금문이야말로 공자의 참된 정신을 전한 것이라고 서술하였다. 이는 곧 성리학에서 주장하는 경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