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이다. 또한 로마네스크 미술에서 나온 새로운 건축요소는 목재 버팀 구조의 천정을 석조로 된 반원통형의 궁륭형 천정으로 바꾸어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적인 요인으로 인해 로마네스크 미술은 그 후 크게 발전해갔는데, 그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수도원이었다.
로마네스크 미술이 가진 가치와 의의를 탐구하여, 한 단계 진보된 로마네스크 미술 연구에 일조하기를 기대한다.
Ⅱ. 프랑스로마네스크건축
1. 들어가는 글
프랑스로마네스크건축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는 1050년에서 1150년에 이르는 100년 간이었다. 당시의 프랑스는 분열 상태였음에도 불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의 그리스도교의 유대감을 단단하게 결속시켰다. 클뤼니 수도회가 이룬 역할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로마네스크 미술의 건축과 조각등을 알아볼 수 없다고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수도회는 아름다움에 치중했다.
이러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클뤼니의 수도원으로서는 프랑스의
건축 양식을 모든 수도원에 도입함으로써 로마네스크 양식을 전파하는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산티아고순례길에 있는 대표적인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으로는 하카의 산페드로 대성당, 프로미스타의 산마르틴 대성당, 레온의 산이시도로 성당,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대성당이 있다. 하카에 있는 산
산티아고)의 무덤을 찾아서 길고 험한 순례길에 올랐다.
순례자의 한결같은 소망은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해서 죄사함을 받는 것이었다. 순례자 가운데에는 국왕과 대주교도 있었다. 순례 여행을 완수하고 속죄를 하고 일련의 경건한 계율을 지키면, 순례를 수행한 증거로 ‘콤포스텔라’라는 증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