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의 증축
a. 증축 과정
이후 효종은 임진왜란 때 도성을 적에게 내어준 것과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저항하다가 치욕적인 항복을 당한 역사에서 북벌계획을 구상하였으나, 그가 재위 10년 만에 세상을 떠나 그 계획이 좌절되고 말았다. 그 후 숙종 즉위년(1674)에 북한산성을 축성하자는 의견
서 론
◈ 에도막부 사회배경 ◈
(1) 도쿠가와 이에야스, 권력을 잡다(에도 막부의 시작)
일본 역사에서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 세 사람은 여러 가지 면에서 잘 비교된다. 우선 통일 과정에 있어서, 노부나가가 떡방아를 찧고, 히데요시가 떡
성의 체성(體性) 축조법
◉ 체성 - 성벽의 몸체부분에 해당되며, 성을 쌓을 때 가장 중심이 되고, 인력과 재료가 가장 많이 든다. 체성의 성능에 따라 그 성의 1차적 방어력이 결정된다.
* 성벽의 기초 시공 : 성벽의 견고성 여부는 벽체의 기초공사에 달려있다.
① 바닥이 암반인 경우 - 산성인
산성전투에서도 목책이 사용되었다.
② 토성(土城)
목책성의 다음 단계로 발전된 형태가 바로 토성이다. 토성은 석성과 함께 우리나라 성곽의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른 시기에 구릉지대를 중심으로 축조되었는데 후대에도 석재를 구하기 힘든 지방에서는 토성이 축조되었다. 성(城)이라는 글자
산성과 평지성의 모습을 두루 갖추고 있는 성벽의 총 둘레는 약 5.4㎞, 평균 높이 5m 정도이고 그 위에는 높이 1.2m 정도의 여장을 쌓았다. 여장은 모두 벽돌로 쌓고 여러 개의 총구를 규칙적으로 뚫어놓았다.
성에는 네 군데 문을 내었다. 북문을 장안문, 남문을 팔달문, 서문을 화서문, 동문을 창룡문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