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군벌들이 위(魏), 진(晋)에 의해 통합되자, 그 과정에서 요동의 공손씨 세력도 위에 흡수되었다. 이때 위는 공손씨 세력에 대한 공격과 더불어 그의 배후세력인 낙랑, 대방지역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동시에 수행하였으며 이에 태수(太守)를 파견하여 군현체제를 정비, 고구려나 삼한(三韓), 왜(倭
장식한 고분들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있는 고분들은 주로 과거 고구려지역이었던 곳에 분포되어 있으며, 신라, 백제, 가야 등도 고분 안에 벽화를 그렸으나 그 수가 매우 미미하고 현재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는 벽화가 드물다. 옛 고구려지역에는 중국 집안 지역의 20여 기를 포함해 총 100여 기의 벽
장한 데서 비롯된다. 타일러 에 의하면 애니미즘적 사고방식은 꿈과 죽음의 경험에서 추리되어 성립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가령 잠자고 있는 동안 몸은 원래의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도 멀리 떠나 있는 꿈을 꾼다거나, 또는 죽음 직후에는 외관상 아무 변화는 없으나 살아 있을 때의 상태와는 다른 것을
고구려는 태학(太學)을 설립하고 불교를 국가적으로 공인하였으며, 율령을 제정함으로써 중앙집권국가를 완성시키고 다시 나라를 정비하였다.
5세기, 고구려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광개토왕은 백제의 수도인 한성(漢城)을 침공하여 남쪽 영토를 임진강과 한강까지 확장시켰고, 신라의 내물왕
고구려는 압록강이북에 있어 이 시기도 당연히 조선에 속하지 않았다. 이렇게 내려가면 오직 "이 때가 마침 효혜 고후의 시대로서 천하가 처음으로 안정되니, 요동태수는 곧 만을 외신으로 삼을 것을 약속하여 국경 밖의 만이를 지켜 변경을 노략질하지 못하게 하였다. …… 이로 하여 만은 군위와 재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