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사를 중심으로 이 시기 신앙결사의 면모를 알아보고, 당시 집권층이었던 최씨정권과의 관계와 당시 불교계의 과제를 통해 신앙결사의 의미를 찾아볼 것이다.
1. 결사운동의 배경
12세기 후반부터 고려는 급격한 전환기를 맞았다. 정치적으로 무신이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등장하여 개경의 문신
-무신정권과 불교계의 관계
무신정권과 기득권을 누렸던 교종 쪽의 불교사원은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불교 쪽에서는 무인들을 정권의 쟁탈자로 보았고, 그에 따라 직접 무인정권에 싸우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무인들의 갈등에 참여하기도 하고, 왕과 귀족들이 왕권회복을 시도할
결사운동이 전개되었다. 우선 지눌 불교의 역사적 위치를 이해하려는 의도에서 定慧結社의 창립과정이나 불교사상, 나아가 수선사의 성립기반과 사회세력과의 관계를 살펴보고, 지눌 이후의 수선사의 성격의 변질과정을 정치세력과의 관계에서 알아보기로 하겠다. 이어서 백련사가 성립되는 당시 상
고려의 혼란은 왜구들로 하여금 도적질로 재물을 탈취해 부를 축적하기에 좋은 기회였다.
당시 중국을 지배하던 원은 극심한 혼란의 상태였다. 한족들이 반란이 시작되고 전국 각지에서 민란이 계속된다. 급기야 1351년 백련교도인 혼건당이 봉기한다. 이 홍건적은 1359년 12월 고려에 밀려들기도 했다
고려후기 양식인 입상대가 다시 나타난다. 반면 상대가 사라지고 견대 부분에 중국종의 특징인 넓은 연판문양이 장식되기 시작한다. 범자문이 본격적으로 장엄되기 시작하는데, 특히 사라진 상대 자리에 원권(圓圈)범자문양대의 장식이 두드러진다. 유곽이 상대에서 분리되며, 비천상이나 불보살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