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이다.
부하가 군율을 어겨 처벌하는 이야기, 가족들의 이야기, 자신의 생활의 작은 일 등이 적혀 있는데 지극히 담담한 어조로 쓰여져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함경도에서 하급 무관의 직위에 있을 때도 일기를 꾸준히 쓴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 시절의 일기는 '진중일기'란 이름이 붙여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 1536-1598)가, 전국 제패를 눈앞에 두고 부하에게 피살된 오다 노부나가(직전신장: 1534-1582)의 뒤를 이어서, 전국을 장악하였다. 1587년 규슈(구주) 지역을 장악하고, 1590년에는 간토(관동) 지역을 제압함으로써 백여년간 지속된 전국 통일이 이
일기에서 133척, 일설에는 500여척)을 맞아 싸울 때의 도망가는 왜선들을 쇠줄로 격침시켰다고 한다.
물살이 빠른 울돌목에서는 학익진법도 소용이 없었다. 잘못하다만 물살에 휩쓸려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지주민들은 가장 폭이 좁은 진도와 해남 우수영에 쇠줄을 연결해서 당겨 왜적을 격파했다고
문학론에 있어서 用事論용사론과 新意論신의론의 현황을 알려주는 좋은 자료가 포함되어 있다. 이제현은 韓愈한유·李白이백 등의 당대 시인들을 비롯한 유명한 중국 문인들의 시를 거론하기도 하고 鄭知常정지상을 비롯한 우리나라 시인들도 거의 망라해서 그들의 시에 대한 평을 하고 있다.
그
임진왜란과 한국문학』, 民音社, 1992, p.11
임병양란을 겪은 뒤인 조선 후기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 제 1기이다. 중세문학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과 근대문학을 이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얽혀 있으므로, 그 시기를 중세문학의 연장이라고 보는 것을 잘못이고, 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