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 구체적인 한시 작품
김시습은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세상의 근본은 무엇인가’ 등의 물음을 품고 이것에 답하기 위해 평생 방황했다. 그는 세조반정 이후 책을 불사지르고 현실을 등졌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세상을 등지고 자연에 은거하여 현실에
“무릇 작문에서는 허식으로 말을 많이 하려 하지 말고 다만 실속 있는 내용을 전개하여 처음과 끝이 일관될 뿐 아니라 자자구구마다 정성 어린 향기를 발산해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입니다. ”
鼠有戴冠者 갓 쓰고 다니는 쥐 떼들이여
主家貓甚仁 주인집 고양이가 너무 어질다
김시습은 즉석에서 자유자재로 시 몇 수를 지어 보였다. 이 보고를 들은 세종은 매우 감동하여 비단 50필을 하사하며 후일을 기약하였다. 이로부터 그가 천재라는 소문이 송도에 울려퍼지게 되었으며, ‘오세문장(五歲文章)’이라는 칭호를 받아 모든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15세 때
문학을 보면 김시습(金時習)이 지은 ‘금오신화(金鰲新話)’란 작품이 있다. ‘금오신화’는 한국 고소설의 출발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민중 사이에서 구전되던 설화, 고려의 패관문학, 가전 등의 서사적 전통 위에 ‘전등신화’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졌다. 비록 한문으로 지어졌고, 명나라 구우의 ‘
1. 매월당 김시습의 생애와 문학관
1.1 김시습의 일생
김시습의 본관은 강릉(江陵)이고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청한자(淸寒子)·벽산(碧山)․설잠(雪岑)이고, 시호는 청간(淸簡)이다. 그의 이름 시습(時習)은 그의 친척이며 집현전 학사인 최치운이 그의 재주에 경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