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였다”고 합의하였다.
제8항에서는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민족의 이익과 해외 동포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합의 하였다. 남과 북은 이 선언의 이행을 위하여 남북총리회담을 개최하기로 하였으며, 제1차 회의를 금년 11월중 서울에서 갖기로 합의하였다.
대북핵외교의 임무를 맡은 것은 국무성 정치군사담당 차관보였던 로버트 갈루치였는데, 북한의 NPT 탈퇴선언으로 미국의 대북 비확산정책의 목표는 이전의 핵안전협정 전면 이행에서 NPT 복귀로 수정되었다. 즉 북한의 NPT 탈퇴 선언은 한. 미 양국이 대북 강경태도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합의하였다.
1992년 소련의 특사 로가초프가 북한을 방문하여 1961년에 체결된 조.소우호협력 및 원조조약은 현실에 맞지 않으며, 특히 제1조 군사조항은 실현불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개정의 불가피성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남북한 핵분쟁에 있어서 남한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지지하였다.
북한 군사대표단이 러시아를 방문하여 양국 간 방위산업 및 군수장비분야 협력의정서에 서명한 데 이어, 8월 4일 김정일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ABM조약 준수, 경제, 군사 등 쌍무적 협조 발전, 주한미군 철수 요구 등 8개 항의 공동선언을 발표하였다.
2002년 10월에는 북
. 그리하여 이 날로 한반도문제는 매듭지어졌다.
한반도문제 밖의 남은 몇 문제들을 더 다루고 모스크바3상회의는 12월 27일 끝났다.
이와 더불어, 모스크바 시간으로 12월 28일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는데,
한반도문제는 제3항에서 4개항으로 정리되었다.
그 내용은 소련의 수정안과 거의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