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내전이 어떻게 끝났는지, 국제여단이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를 알고 있다. 그렇기에 단순히 낭만적으로 국제여단을 서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 국제여단이 등장하기까지의 유럽과 스페인의 상황과 이어지는 내전의 발발, 그리고 국제여단의 등장을 포함한, 내전이 스페인 외부와 맺는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국가주의자들이 승리하였다. 이후 프랑코는 1975년 죽을 때까지 스페인에서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독재자로 자신들에게 반대했던 공화파(노동자, 농민, 지식인)와 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하게 된다.
스페인내전 중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독일의 히틀러가 보낸 독
자유진영, 사회진영, 파시즘이라는 국제블록의 갈등상황 때문에, 단지 국지적 내전이 아닌 이데올로기간의 각축장이라는 인식을 당시 서구인들에게 각인시켰다. 그 결과 스페인 민중들의 투쟁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그 시기 동안 파시즘에 대항하는 유일한 전선으로서 인식되었다.
. 이는 에스파냐의 파시즘화에 대한 최초의 민중적 반격이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전선의 분열, 노동자와 농민의 동맹실패, 중간층과의 결합실패가 있었고, 투쟁의 지역적 고립이 치명적인 결점이 드러나기도 GOteK.
군대를 동원한 노동운동 탄압으로 인해 급격히 지지율이 하락하였다.
스페인 육군에서 최연소 대위에 오르고 1923년 스페인 외인부대 총사령관직을 맡아 스페인령 모로코에서 리프족이 벌인 독립 운동을 진압하는데 전공을 세웠다. 1925년 2월 대령으로 진급한 프랑코는 9월 프랑스군과 합동해 모로코와 벌인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화려한 전공을 인정받아 34세에 여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