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松江). 돈녕부판관 유침(惟沈)의 아들이다. 어려서 인종의 귀인인 큰 누이와 계림군유(桂林君瑠)의 부인이 된 둘째누이로 인연하여 궁중에 출입, 같은 나이의 경원대군(慶源大君 : 명종)과 친숙해졌다.
10세 되던 해인 1545년(명종 즉위년)의 을사사화에 계림군이 관련되자 그 일족으로서 화를 입
Ⅰ. 담양의 문화재
담양군에 최초로 주민들이 거주한 흔적이 발견된 것은 현재의 봉산면 제월리에서 석기류가 출토된 흔적이 있었고, 주변마을에서 지석묘들이 발견되고 있어 석기문화인들이 주위환경을 이용하여 농경과 수렵을 위주로 공동 취락지를 형성하며 살았다고 추정된다. 현재의 담양군은
송강 정철의 문학 세계는 당대의 자연적, 사회적 환경과 사우(師友)의 영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송강은 을사사화로 말미암아 15세까지는 거의 학문을 배우지 못하고 있다가 16세 되던해 부친의 귀양살이가 풀려, 부친을 따라 선조의 묘소가 있는 호남 창평으로 내려와서 비로소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과의 인연
그의 아버지가 귀양에서 풀려난 것은 그가 16세인 1551년(명종6년)인데 그 길로 그의 아버지는 자연에 묻혀 살기로 하고 식구들을 데리고 할아버지 묘소가 있는 전라남도 창평(지금의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당지산 자락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10년을 보냈다. 담양에서의 생활은 송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