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의 모든 생활영역에 깊이 스며있는 과학혁명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교육에 관한 새로운 관심이 나타난 곳은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계획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리하여 이 방면에서 몇 가지 괄목할만한 발전이 이루어졌다. 대학의 과학자와 교수들
학습의 준비성
대담하면서도 교육과정의 성격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가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교과든지 지적으로 올바른 형식으로 표현하면 어떤 발달단계에 있는 어떤 아동에게도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이다. 이 가설의 이해를 위해서 브루너는 아동의 지적 발달과정에 관한 문제, 학
구조를 묻는 질문에 대하여는 그 중의 한 가지 대답, 즉 후자의 대답만 가능하다. ……(중략)
그러므로 문제는, 우산의 경우에, ‘가운데가 있고 ……’라는 대답이 우산의 구조를 말하는 것과는 달리 ‘비를 막는 것’이라는 대답은 우산의 용도, 또는 구조와 좀 더 정확하게 대비되는 말을 쓴다면,
학습의 증진이 표준화된 학교 교과과정의 습득으로 인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학교교육은 스스로가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교육적 욕구를 제거시키고 스스로가 창의적으로 학습할 책임과 기회를 빼앗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리치는 학교제도의 문제점으로 인해 파기된 인간성을 회복시
명료화하며 그 경험에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여러 가지 교구를 잘 활용함으로써 훨씬 효과적으로 완수될 수 있다. 교사와 교구사이에 반드시 갈등이 있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교육의 목적과 필요한 조건을 고려하여 교구를 개발한다면 교사와 교구 사이에는 아무 갈등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