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이다. 성리학이 조선사회에 뿌리내리면서 선비의식은 사대부들의 규범으로 정착되고, 성리학적 교육의 과제는 선비의식의 함양과 그 실천으로 귀착되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성리학자로 여겨지는 퇴계 이황이 주목할 만한 교육사상가였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황의 교육사상은 성
교육의 내용과 방법에 대한 포괄적이고 밀도 높은 사상이 깃들이어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 간직된 사상이나 교육과정 정신은 율곡에 그치지 않고 조선시대 교육의 이상적인 목표와 일반적인 준행의 지표가 된다.
학교규범은 모두 16조목으로, 선비된 자의 몸가짐과 일 해 나가는 준칙으로서 ① 立志 ②
자제를 교육하는 제가 있어 그들의 학을 추모하여 덕을 닦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본래 서원은 선비가 고요히 학문을 닦기 위하여 지은 것이며, 향현이 있으면 제사를 드리고 그 공덕을 보답하고 모범을 표시하는 것이라 하여 서원의 설립 동기나 목적이 주자학적 교육에 있음을 강조하였다.
교육이 있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신라와 고려의 두 왕조는 국교로 정할 정도로 불교를 신봉하였으나 조선왕조는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정책을 펴 왔다. 이러한 전환은 그 동안 불교와 유교는 서로 화합할 수 없는 신념의 요소들을 묵시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탓도 있지만, 그것의 직접
조선 사회의 양심이요 지성이었다.
실학사상
실학사상의 개념은 허 (虛)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서 실질적인 학문으로 고려에서는 불교를인륜 규범에 관한 실천적 예학 으로 삼았고 조선 초기 정통 유학자들이 비실용적인 사장학(詞章學)에 대비하여 자신들의 철학인 도학 즉 성리학을 실학이라고